오이카게: blind game

[오이카게] Blind Game 6

seta9 2017. 2. 19. 15:58

 

 

 

Blind Game

 

 

 

◆◆◆

 

 “백화점 내부의 CCTV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백화점 입구 및 인근의 CCTV를 모두 분석한 하나마키 요원은 그 시간 내부에 있었던 자가 카게야마 토비오오이카와 토오루요원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혹시 제 3자가 원격으로 제어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사용했던 IP가 내부의 것이었고, 그 외에도 내부에서만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신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사건 후에도 계속 남아 있었던 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 집니다.”

 “그렇군. 참 기이한 일이야. 하나마키 요원을 능가하는 해킹 실력을 가진 수의사라니.”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자리 잡았다. 이와이즈미는 보고하기 쉽도록 펴 놓은 카게야마 토비오의 파일을 응시했다. 약간 긴장을 하고 정면을 보고 있는, 지금의 그보다 34년 정도 앳된 얼굴이 이제는 좀 다르게 보였다. 그는 사진 위에 뚜껑을 열지 않은 볼펜으로 무색의 선을 계속 덧그렸다. 통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국장님께는 내가 보고 드려 놓도록 하지.”

 지국장은 관록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매우 중요한 일이니만큼, 아셔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는군. 관심을 가지실 것도 같고. 위에서 에 대한 방침이 내려오면 바로 알려주겠네.”

 “알겠습니다.”

 

 통화는 다음 임무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으로 넘어갔다. 이미 메일로 받은 내용 중 중요한 사안들을 확인하고나서야 팀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

 이와이즈미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창에 설치된 블라인드의 틈새로 희미한 새벽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느덧 아침이 오고 있었다. 몇 시간 후면 어제의 일에 대한 팀내 브리핑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느라 줄곧 잠을 자지 못한 팀장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거칠게 비볐다.

 

 “오이카와 녀석.”

 

 사실 그가 지금 가장 불안한 것은 오이카와였다. 이 팀으로 같이 일한지 어느덧 2년이 되었다. 그에 대한 프로파일링에는 외유내강이라고 적혀 있었고, 일해 본 결과. 맞는 평가였다. 그저 감이 좋다라는 말로 끝내기는 하지만 살벌하리만치 날카로운 감각 뒤에는 남달리 섬세한 감정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심지어 자신의 성격적 특징이 주는 장점은 활용하고, 단점은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이 오이카와의 가장 무서운 점이자 믿을만한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은 달랐다. 본부의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그는 지침을 따르는 대신, 카게야마 토비오를 보호하는 쪽을 택했다.

 

 “설마.”

 

 더 진해지는 빛이 탁자에 빗살무늬를 그려내는 것을 보며 그는 한탄을 지어냈다. 영화처럼 만든다. 그것이 이곳의 기조였다. 그렇다면 그것을 완벽하리만치 잘 수행해낸 주인공은. 오이카와 토오루는.

 

 “네 녀석, 시덥잖게 영화 주인공 흉내를 내진 않겠지.”

 

 설마 얼토당토 않게 사랑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팀장은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

 

 “설마 마츠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 마츠-입니다.”

 

 신이 난 두 사람의 손에는 팸플릿과 화려하고 조잡스런 가면 같은 것들이 들려 있었다. 마츠카와가 입에 문 피리로 뿌뿌소리를 내는 동안, 하나마키는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용돈을 챙겼다. 이와이즈미가 와이셔츠 소매 자락을 걷어 올렸다.

 

 “둘 다 그-만해라.”

 꽉 다문 잇새로 나직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요란한 추임새가 멈췄다. 둘은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팀장을 돌아보았다.

 “너무하잖아. 이 지역 최고 규모로 열리는 마츠리라고.”

 “그래! 저번에 놀이공원이 아니어서 얼마나 섭섭했는데.”

 

 말없이 의자를 끌어다 앉은 이와이즈미는 보고 파일을 쾅, 소리 나게 탁자 위로 떨어뜨렸다10권은 족히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

 

 두두두두. 소리를 내며 동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뿌우, 힘없이 마지막 소리를 낸 피리가 입술에서 낙하했다. 자신들의 어마어마한 일거리를 보며 서포터 팀들의 어깨가 수직 하강했다. 팀장은 서류 더미를 탕탕 소리 내어 두드렸다.

 

 “아직 지난 번 임무 보고도 다 안 끝난 상황에서 놀 생각은 하지도 마. 4번째 임무도 올 테니까.”

 “이와쨩, 빼앗긴 2번째 파일은 회수 안 해?”

 “그건 다른 팀으로 배정되었어.”

 “헤에? 오이카와씨, 조금 한가하네?”

 

 화색이 깃든 얼굴을 보며 이와이즈미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오이카와, 마츠리는 꿈도 꾸지 마라.”

 “마츠리?”

 요원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한껏 치켜들었다.

 

 “오이카와씨를 너무 듬성듬성 보는 거 아니야? 그런 건 애나 가는 거야. 예쁜 애인이 있으면 혹시 모를까.”

 “마츠리를 모독하지 마라. 오이카와.”

 “그래. 너라도 용서할 수 없어. 아니, 너라서 용서할 수 없는 거지만.”

 

 파일을 촥촥 넘겨가면서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한 마디씩 덧붙였다. 대부분 이런 사후처리는 서포터의 몫이었고, 오이카와는 지난 사건에 대한 결과 브리핑과 시말서 건으로 와 있을 뿐이었다. 난리 통에서 홀로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요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층과 맛키의 정신연령 괜찮아? 고작 마츠리에 흥분해서는.”

 어이가 없어서, 정말. 누가 그런 걸. 이 나이 먹고 누가 그런 곳을 가. 요원은 그들의 입술이 업무로 틀어 막힌 틈을 타 혹평에 혹평을 일삼았다.

 

◆◆◆

 

 “저는 마츠리 좋아합니다.”

 “.”

 “왜 그런 반응입니까? 좋아하면 안 됩니까?”

 

 거실 바닥에 앉아 고양이를 잡고 붕대를 다시 감아주던 수의사가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식탁에 앉아 포장해온 고급 수제 도시락을 먹고 있던 오이카와는 떨어뜨리려던 나무젓가락을 다시 잘 쥐었다. 연어 구이부터 미소된장국까지 다양하고 정갈하게 포장된 도시락은 2인분을 살짝 넘은 양이었다. 요원이 사온 것이었다. 말하자면.

 둘은 지금 연인 역할극중이었다. 당당하게 상대 역할을 요구하는 오이카와에게 조금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의사는 용케 자신의 집 문을 열어 주었다. 여전히 장식품이나 사진이 하나도 없는 삭막한 공간이었다. 그는 젓가락으로 초밥 장식을 깨작이며 흐응 소리를 냈다.

 

 “그런 데 관심 없을 줄 알았는데요.”

 “…좋아합니다.”

 

 상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대답이 많이 짧긴 했지만 대화를 하면서도 자신의 손가락만한 조그만 발에 붕대를 잘도 감아주고 있었다. 능숙해 보였는데, 막상 당사자는 그게 아닌지 고양이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목울음을 울었다. 사납고 조그만 동물의 신경을 거스를까봐 한껏 조심하면서 매듭을 지은 수의사는 입으로 의료용 고정 테이프를 찢어냈다.

 

 “이 지역은 특색 있는 마츠리가 많이 열리는 곳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행사니 볼만 할 겁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보러 온다고 들었어요.”

 “흐응.”

 

 요원은 뒷모습을 새삼스레 다시 훑었다. 새까맣고 단정한 머리카락이 조그만 움직임에도 잘 반응하여 움직였다. 조물조물 뭔가 섬세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불필요한 움직임은 별로 없어서 고요해 보인다. 오이카와는 턱을 괴었다.

 

 “. 아얏.”

 “아오옹!”

 

 여기까지 참아준 것을 고마워하라는 듯 도도한 눈빛으로 고양이는 수의사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다. 피는 안 났지만 따끔하고 찌릿해서 카게야마는 잠시 손가락을 감싸 쥐고 있었다. 꼬리를 길게 휘두른 고양이는 도도도 걸어가 소파 밑 따뜻한 공간에 착석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똑같은 것들이 서로를 똑같은 표정으로 보고 있어서, 무심코 웃음이 터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죽을 뻔한 일을 같이 겪었는데, 지금은 고양이와 도시락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일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대 때문에 요원도 아무 생각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물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집에 들어와서 잠시 탐색작업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동료 분들과 가실 생각입니까?”

 

 바닥에 흐트러져 있던 동물용 의료품을 정리해 상자에 넣으면서 카게야마가 물었다. 이것저것 주워 담느라 수그러진 자세에 허리가 티셔츠 밑으로 그대로 비쳤다. 토비오쨩은 살이 좀 쪄야겠어. 여전히 식사 중이던 요원은 음식이 많이 남겨져 있는 상대의 밥그릇과 허리를 번갈아 보며 생각했다.

 

 “직장에서만 보는 것으로 충분하거든요? 오이카와씨가 왜 그런 시꺼멓고 재미없는 사내들과.”

 “그렇군요.”

 

 의료용품을 착착 정리해 넣는 손이 뚜껑을 닫았다. 요원은 그것을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가, 정말로 큰 생각 없이, 그러니까 의도 없이.

 

 “같이 갈래요?”

 라는 말을 툭 던져 보았다. 그런데.

 “?”

 

 수의사의 고개가 휙 돌아왔다. 눈이 조금 커져 있었다. . 좋아한다. 파바바방 꼬리가 직선으로 곧추세워져 있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것은 다른 이야기를 알려오는 것이기도 했다. 이 제안. 여기서 무르면 반드시 화낼 거다. 삐질 거다. 실망할 거다. 엄청나게 실망할거야

 

 “, 내일 갈까요?”

 머리속에서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얼굴이 차례로 지나갔다.

 

◆◆◆

 

 “, 보고는 이것으로 끝. 다음 번 임무는 이틀 뒤야. 그때까진 각자 휴일이다.”

 

 입 밖으로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지으며 팀장이 폐회를 선언했다. 밤샘 작업을 끝냈던 서포터 팀은 그대로 탁자에 엎어졌다. 여기저기서 곡소리 비슷한 것이 나왔다. 마찬가지의 모습으로 허리를 두드리던 마츠카와가 생각났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팀장, 혹시 이틀 간 멀리 가도 되나?”

 “비상이 언제 뜰지 몰라서 어렵긴 한데, 무슨 일이야?”

 마츠카와가 목덜미를 슥 훑어 내렸다.

 

 “전에 말했던 카게야마 토비오의 후원자를 직접 찾아가 보려고 하거든. 근데 훗카이도 지역이라 좀 머네.”

 “네가 직접 가본다고?”

 “전자 문서로는 더 뒤질 것도 없고, 어렸을 때부터 후원했다고 하니까 직접 인터뷰 해 보면 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

 “으음.”

 

 이와이즈미가 턱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 하나마키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팀장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안에 돌아올 수 있겠어?”

 “멀어도 일본 안이고, 결국 비행기를 타면 금방이니까. .”

 “좋아. 필요하면 백업을 요청할 테니 다녀와.”

 “, 늦지는 않을 거야.”

 

 믿음직스럽게 얘기하는 그의 어깨를 한번 잡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 토비오의 얘기였는데, 아까부터 딴청을 부리는 듯 대화에 참여하질 않고 있었다. 그것이 수상했다. 그는 요원의 바로 옆에 서서 데스크에 기대앉았다.

 

 “오이카와. 지난 번 CCTV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

 “으응. . 토비오쨩이 서프라이즈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라면 들었어. 평소 모습으로 볼 때 믿어지진 않지만.”

 “계속 말해왔던 것 같은데 이제 정말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거리를 둬.”

 “. 새삼 거리를 둘 만큼 가깝지 않은데?”

 “어제 저녁 같이 먹었잖아.”

 

 요원은 입술이 X자 모양처럼 뾰족 나왔다가 들어갔다. 멍뎅하게 동그래졌던 눈이 잠시 하나마키를 향했다. 포켓몬 게임 중이던 그는 아주 조금 손을 들어올렸다.

 

 “물어봐서 대답했을 뿐이지만, 미안.”

 

 깔끔한 사과였다. 네 녀석이었구나. 시퍼런 표정을 잠시 지었던 오이카와는 깊이 숨을 쉬고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이와쨩. 알다시피 그게, 상대 팀이 어쨌든. 주시할 여지가 있고. 너무 급격한 온도 차이는.”

 “오이카와.”

 팀장은 매섭게 말을 끊어 쳐냈다.

 “보고를 했으니, 중앙에서 곧 지침이 내려 올 거야. 우리보다 보안 등급이 높은 곳이니까 하나마키가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 여기는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지부라 중앙시스템과 좀 다르기도 하니까. 어쨌든 나도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카게야마 토비오의 수상함을 찾을 생각이야.”

 “수상하긴 하지만, 일단 그 사람이 토비오라고 해도 결국 우리를 도와준 쪽이잖아요?”

 “마음 풀지 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꾹 눌러 탁자에 비볐다.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이마를 차가운 나무판에 댄 요원은 고개만 빙글 돌려, 팀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알 것 같았다. 오이카와 역시 그것을 스스로 경계하던 참이기도 했다.

 

 “이와쨩은 설마 내가 토비오쨩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해?”

 “넘어가기 직전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그런 예쁜 구석이라고는 없고, 수상쩍은 남자에게 빠지지요?”

 

 듣고만 있던 서포트 팀의 손가락이 일제히 오이카와를 향했다. . 하는 소리를 낸 요원은 좌우로 고개를 세게 돌렸다.

 

 “그런 거 아니거든.”

 “말 말고 행동으로 해.”

 

 팀장의 손이 꾹 한번 누른 뒤에 떠나갔다. 잔뜩 부은 볼을 하고, 오이카와가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자, 키스하기 직전 독특한 박자로 깜박이던 수의사가 떠올랐다.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던 조그만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젠장.

 요원은 스스로 이마를 탁자에 박고 눈을 감았다.


◆◆◆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까.

 과하지 않게 몇 개의 무늬가 들어간 유카타 소매를 살짝 걷어 시간을 확인한 오이카와는 옆집 문을 보았다. 그래도 약속은 했으니까. 그 말이 얼마나 허접한 변명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지막이야. 이 정도 보여줬으면 상대팀도 관심을 끊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철컥,

 옆집의 문이 열렸다. 계속 주시하고 있던 터라, 익숙하지 않은 신발을 신고 깽깽발 쳐서 나오던 수의사와 쉽게 눈이 마주쳤다. 유카타 차림이었다. 오이카와는 팔짱을 끼고 씨익 웃어 보였다.

 

 “으응? 유카타네요.”

 “오이카와씨야 말로요.”

 

 몸을 바로 세우며 이웃집 남자가 대꾸했다. 조금 빳빳해 보이는 재질의 유카타가 몸의 각을 잡았다. 빤하게 보는 시선을 어려워하지 않고 요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역으로 관찰자의 시선을 돌려주자, 이웃집 남자는 숨을 훅 들이마시고 시선을 피했다.

 

 “오이카와씨, 유카타 차림 보니까 어때요? 역시 기대보다 멋있어?”

 놀리고 싶어져 얼굴을 바짝 들이밀자, 남자는 어영부영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섰다. 귓가가 또 새빨개져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왜 매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생각보다 카게야마씨가 옷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서요.”

 “그냥 집에 있던 거 입은 겁니다.”

 

 칼같이 자르는 말을 내려두고, 카게야마는 걸음을 더 빨리 해서 오이카와 옆을 휙 지나쳤다. 뭘 좀 찬찬히 볼 새도 없이 가버리는 남자였다. 옷차림 때문에 펭귄 같아 보이기도 하는 카게야마의 뒤를 따라가던 요원은 곧 눈썰미 좋게 무언가를 발견했다.

 

 “?”

 카라 뒤로 뭔가가 달랑거렸다.

 “-.”

 

 그것은 가격표가 잘린 텍이었다. 집에 있던 건 무슨. 빌어먹게 귀엽네. 정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눌러 참고 그는 카게야마를 따라잡았다.

 

 “저기요.”

 그리고 주의를 딴 데로 돌려놓고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소매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

 

 “,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

 

 마츠카와는 키의 네 배도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철문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가벼이 불었다. 주소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고저택이었다. 이끼와 담쟁이 넝쿨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붉은 벽이 흡사 성과 다름없는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첨단의 장치들로 철통같은 보완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길고 긴 소리가 나무 사이사이를 휘돌며 메아리를 울린다.

 

 “누구십니까?”

 정중하고 틈 없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그는 허리를 약간 숙여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였다.

 “마츠카와 잇세이라고 합니다. 어제 전화 드렸던 도쿄지부의 형사입니다만.”

 품에서 꺼낸 가짜 신분증을 화면에 가져다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츠카와는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말씀드렸던 대로 귀 댁에서 후원했던 카게야마 토비오에 대해 여쭤 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

 조금 잡음이 섞인 침묵이 흘렀다.

 “. 저희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츠카와씨. 곧 정문 현관에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인터폰이 끊겼다. 그는 여기까지 끌고 왔던 캐리어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고목의 향내와 버섯의 꿉꿉한 내음, 물기가 잔뜩 배인 흙의 냄새 등등이 나쁘지 않게 뒤섞여 있었다. 건물도 그렇고, 조경도 그렇고 고풍스러운 곳이었다. 동시대와 뚝 떨어져 있는 다른 시대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그가 자랐을까. 잠시 카게야마 토비오의 표정 없는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덜컹.

 문이 열렸다. 녹슨 문이었는데 자동으로 좌우로 끌어당겨지는 것은, 또한 첨단이라서 기이했다. 안쪽에서는 동화책에서 보던 것처럼 격식적인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츠카와씨.”

 “, 저는 어디까지나 조사의 입장으로 온 거니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츠카와가 가벼이 선을 그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지금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사건에 주요 참고인이라 설명이 필요하다.’ 라는 것이 이번 방문의 핑계였다. 가짜 신분을 내걸은 방문이었지만, 그는 긴장하는 기색 없이 캐리어를 자연스레 쥐었다. 중년 남자의 고지식한 얼굴에서 안경이 빛났다. 그는 세련된 예절로 허리를 숙이며, 솜씨 있게 상대의 짐을 자신이 받아 쥐었다.

 

 “오랜만에 듣는 도련님의 소식입니다. 주인님께서 많이 궁금해 하고 계십니다.”

 “도련님입니까?”

 “후원이라기 보단 양자에 가까운 관계였답니다.”

 

 본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는 천천히 말을 섞기 시작했다.

 

 “카게야마 도련님의 부모님께서 주인님과 각별한 관계이시기도 했고, 도련님 자체도 귀애하셨습니다. 특히 재능을 높이 사셨지요.”

 “재능이라면.”

 “, 어쩌면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허리를 쭉 폈다. 눈은 도련님에 대한 자부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도련님께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수학자이십니다.”

 “수학자요?”

 

 같은 글자로 시작하긴 했지만, 그의 지금 모습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마츠카와는 통화권 이탈이라고 떠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잠시 확인하고 앞을 보았다. 두어 개의 대리석 계단 위로 섬세하게 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문이 보였다. 짐을 잠시 세워둔 남자는 현관문에 자신의 지문을 인식시켰다. 문이 소음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수학에서 파생되는 모든 학문은 도련님에게 요람처럼 편안하고, 장난감처럼 쉽지요. 뿐만 아니라 물리나 생명과학 쪽에서도 특출 나셨습니다. 그야말로 천재이셨던 거지요. 아마 도련님만큼 기계의 언어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카게야마씨는 지금 전혀 그 쪽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건 의외로군요. 분명히 해킹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

 

 마츠카와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두피가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살짝 흘렀다.

 

 “그래서 의외였던 겁니다. 수의사와 해킹이라니.”

 “그렇군요.”

 

 조금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답한 남자는 다시 짐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어두침침할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안은 밝았다. 그것도 매우 밝았다. 마츠카와는 헛기침을 하고, 넥타이를 조금 풀어냈다. 남자는 짐을 한쪽 구석에 잘 세워 두었다.

 

 “주인님께서는 2층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대로 절 따라오시면 됩니다.”

 

 1층의 거의 대부분은 홀이었고, 나선형의 계단이 좌우 대칭으로 2층을 향해 있었다. 말을 끝낸 그는 거침없이 오른쪽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마츠카와는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의 눈은 벽에 멈춰있었다.

 

 “이 사진들은 뭡니까.”

 

 계단 옆 벽들에는 크고 작은 액자가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그는 가장 첫 번째 사진부터 차례대로 시선을 올려 나갔다. 모두 같은 인물의 사진이었다.

 

 “보시다시피 카게야마 도련님의 사진들입니다. 주인님께서 치우길 원하지 않으셨지요.”

 “이건 좀.”

 

 마츠카와는 입가를 한번 쓸어내렸다. 이 벽을 무늬처럼 채우고 있는 사진의 하단에는 연도와 월,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눈으로 대충 어림잡아도 백여 장이 넘어 보였다. 그 어떤 사진도 없다고 했던 카게야마의 집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것은 조금, 아니 확실히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인자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손끝이 첫 번째 사진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져 나갔다.

 

 “주인님께서는 도련님을 정말 아끼셨습니다.”

 

 아낀다는 그 말이 이제 곱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집착처럼 보이는 애정에 속이 메슥거려서 마츠카와는 대답 없이 아주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계단은 카게야마 토비오가 깔려 있는 길이었다. 그는 8살부터 천천히 그것을 따라 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진은 서재였다. 혹은, 책상 앞이기도 했다. 집 안 어느 공간으로 보이는 벽난로 앞인 경우도 있었다. 모두 독사진이었으며, 100여장 중 한두 장을 빼놓고서는 필기도구를 든 모습이었다. 핸드폰을 사용해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남자의 걸음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빨랐다. 마츠카와 본인도 사진 속 카게야마 토비오에게 정신을 빼앗겨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17살의 어느 겨울. 영어와 독일어로 되어 있는 상장과 학위서 를 들고 있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사진을 끝으로 계단도 동이 났다. 남자는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여태까지와 달리 아주 어두운 방이었다.

 

◆◆◆

 

 “오이카와씨!!!! 금붕어 잡기입니다!”

 “네에, - .”

 

 팔이 휙 당겨졌다. 이 남자 흥분했다. 요원은 이번에도 역시 의외의 포인트에서 빛을 발하는 옆집 남자의 눈동자가 신기했다. 이 지역에서 꽤 오래 살았으니, 매년 볼 수 있었을 텐데. 30세 남자는 모든 것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눈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시종 낮게 깔려 있던 목소리 톤도 두 개 정도 올라가 있었다.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무심코 손을 잡았는데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손은 빨갛고 따뜻했다.

 

 “진짜 좋아하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거 해볼래요?”

 “당연히 할 겁니다.”

 

 퉁명스럽게 대거리를 하면서도 웃는 낯으로 수의사는 기다란 수조 앞에 쭈그려 앉았다.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마츠리인지라 어른들도 꽤 있었다. 오이카와도 자신의 종이국자와 바가지를 들고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빼곡하게 수조를 채우고 있었다. 그 안을 옆집 남자는 사냥하는 고양이 같은 얼굴을 하고 들여다보았다. 동공이 까맣게 확장되어 눈동자에 가득 찼다. 다 도망가겠네. 노골적인 모습에 요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카게야마씨, 이거 잘해요?”

 분명히 못할 거야.

 “모릅니다.”

 

 텀벙. 대답과 함께 수의사는 종이국자를 물에 집어넣었다. 대답처럼 거친 손놀림이었다. 목표였던 빨간 물고기는 국자 안에 담기지도 못하고, 뚫린 바닥을 통해 잽싸게 도망갔다.

 

 “뭐에요? 이 처참한 실력은.”

 “생각보다 어렵네요.”

 

 수의사는 다음 종이국자를 손에 들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어렵네요.’ 정도가 아니었다. ‘답이 없네요.’ 정도면 모를까. 지금 보여준 투박한 솜씨로 한 마리라도 뜰 수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질 수도 있었다. 결과가 뻔히 눈에 보여서 오이카와는 괴고 있던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텀벙.

 “카게야마씨.”

 푸욱.

 “카게야마씨?”

 지이익.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소리가 나는 건데요!?”

 

 오이카와는 찢어진 종이국자가 조그만 무더기로 쌓이기 시작한 것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금세 새로운 것을 다시 받아 들고 있던 수의사는 태연한 표정으로 요원을 바라봤다.

 

 “원래 다 이런 거 아닙니까?”

 “원래는 이런 거죠.”

 

 그는 유카타의 소매를 걷어붙였다파바박, 빠르고 날렵하게 손을 놀려졌다. 번개 같은 솜씨에 속절없이 낚인 물고기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경쾌한 박자에 저절로 시선이 모이고, 금세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물고기가 쌓이고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을 때에야 요원은 정신을 차렸다.

 

 “으응?”

 “오이카와씨.

 그리고 수의사는 단호한 태도로 주변의 주의집중을 거절하고 있었다. 요원의 미간이 확 좁혀들었다.

 

 “장사하시는 분들 생각도 해주셔야죠.”

 “그렇게 차가운 눈빛으로 보지 말아줄래요? 상처받았어.”

 

 오이카와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대부분은 돌려주고 두 마리만 봉지에 담은 것을 받은 카게야마가 뒤를 따라갔다.

 

◆◆◆

 

 방은 너무 어두워서 바로 앞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한 일인 것처럼 남자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가스내음과 함께 등불이 약하게 켜졌다. 그제야 마츠카와도 안을 조금 볼 수 있었다.

 

 “주인님. 마츠카와 잇세이씨이십니다.”

 “오오.”

 

 짧은 감탄을 내뱉는 목소리는 나직했고, 늙어 있었다. 온통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한 사내가 휠체어 채로 뒤를 돌았다. 전동의자에는 링겔대가 연결되어 있었고, 남자의 손등에는 길고 두꺼운 바늘이 꽂혀 있었다. 그것 때문일까. 방 안에서는 약냄새가 진하게 우려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소. 마츠카와씨.”

 

 걸걸하고 거친 목소리가 귀를 찔러왔다. 숨소리가 둔하고 탁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가 겪고 있을 병세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기까지 안내한 남자가 무릎담요를 챙겨와 노인의 무릎을 덮었다.

 

 “자네가 토비오의 소식을 가져왔다지.”

 

 노인은 검버섯이 잔뜩 핀 손을 뻗으며 말을 건넸다. 마츠카와가 그것을 마주잡았다. 이 집처럼 아주 뜨거웠다.

 

 “. , 사실은 묻는 쪽에 가깝습니다만.”

 “어느 쪽이라도 좋네. 그 아이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아.”

 

 그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너무 많은 나이가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여, 인자해 보인다기 보다는 차라리 괴이해 보이는 미소였다. 그는 마츠카와의 손을 놓았다. 그러나 뜨거운 체온은 여전히 불처럼 손에 감각을 남겼다.

 

 “그래, 우리를 떠나버린 천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지?”

 얼마 남지 않은 이빨 사이로 새까만 입속이 보였다.

 

 “갈망했던 삶을 살고있나?”

 

 가래침이 들끓는 기침이 뒤를 이었다. 남자는 옆에서 건네주는 손수건을 잠시 입에 대고 있다가 놓았다. 마츠카와는 힐끗 그것을 곁눈질했다. 희번뜩한 흰자위를 물들이고 있는 핏발처럼. 검붉은 핏덩어리로 얼룩져 있었다.

 

◆◆◆

 

 그 다음 흐름도 비슷했다. 참새가 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수의사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어떤 가게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부지런히 축제를 경험했다. 흡사 숙제라도 하는 것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그리고 그것은 공기총 가게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걸 꼭 해야겠어요?”

 

 이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대부분, 그러니까 거의 모든 운동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야무지지 못한 손에 총 비슷한 것도 쥐어주고 싶지 않은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안됩니까?”

 “뭘 부수려고.”

 “?”

 “아뇨. 잘 해보시라는 뜻이에요.”

 

 답변의 저의에 대해 의심스러워하면서도 수의사는 여전히 신이 난 표정이었다. 오백 엔을 건네고 받은 모조 총기는 크기나 모양은 실제와 비슷하지만 구성이 조잡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도 다루는 사람의 눈에 찰 리가 만무해서 요원은 같이 하는 대신, 판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 그런데.

 

 “으응?”

 

 잡는 자세가 제법이었다. 어깨에 단단히 총대를 받치고 있는 것이나, 손가락의 위치, 무게 중심. 모두 괜찮았다. 눈동자가 목표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운동이라고는 할 줄을 모르는 남자가 사격의 기본은 알고 있는 자세인 것이 의외였다. 오이카와가 슬쩍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카게야마는 제일 작은 표적을 노리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피잉. 그리고.

 ―퍼억

 “어억!”

 쏘는 순간의 반동으로 인해 수의사의 몸이 크게 뒤흔들리고, 이마에 정통으로 총알을 맞은 판매원이 비명을 질렀다.

 “, 죄송합니다.”

 

 옆집 남자는 허리를 연신 숙여가며 사과를 했다.

 맙소사. 오이카와가 이마를 탁 쳤다. 자신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것 같았다.

 

◆◆◆

 

 어느덧 늦은 시간이었다. 마츠리의 꽃인 불꽃놀이는 정작 거절한 옆집 남자의 뜻에 따라, 둘은 돌아가는 길을 걸었다. 손에는 까만 것과 화려한 금붕어 한 마리씩 담긴 비닐봉지를 들려 있었다. 좁은 봉지 속을 뱅글뱅글 돌고 있는 물고기를 보다가, 오이카와가 입을 열었다.

 

 “매년 이랬어요?”

 “매년?”

 “마츠리요. 마츠리. 매년 이렇게 신나서 다녔냐구요.”

 “.”

 

 수의사는 대답을 하려 입을 열었다. 어느새 집이었다.

 

 “.”

 

 나란히 위치한 각자의 현관문을 보자, 남자는 새삼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몽실몽실한 구름 위를 걸어 다니는 듯 끝이 문질러져 있던 눈동자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새까만 안개가 몰려들어 빛을 거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돌아온 옆집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

 “재미있었습니다.”

 “.”

 “기대 안 했었는데, 정말로.”

 

 옆집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형식적인 미소였다. 요원은 저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남자가 관계를 절단 내고 내빼버리려고 할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는 머리를 쓸어 넘기고, 걸음이 빨라지려고 하는 수의사의 팔을 살짝 잡았다.

 

 “카게야마씨.”

 “.”

 “백화점에서 어떻게 했어요?”

 “뭐를 말입니까?”

 “CCTV 장악이요.”

 “저는 그런 거 안 했는데요.”

 

 오이카와는 슬며시 웃었다. 장악이 어떤 상황인지 되물어 보지도 않았다.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의식적인 그 짧은 대답 속에 답이 있었다. 놀랍게도, 정말로 이 남자가 한 일이다. 30세의 평범한 수의사가 보안벽을 뚫어내었다. 그것도 아무 준비 없이, 짧은 시간 동안에.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요원은. 아주 어수룩한 남색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다.

 

 “무의식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리거든요. 지금 카게야마씨처럼.”

 “거짓말 아닙니다.”

 “지금도 또 흔들렸는데.”

 

 그는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새까만 속눈썹 안 쪽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던 빛이 한 바퀴를 돌아 상대를 다시 향했다. 머뭇거리며 한 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는 입술이 결국 꾹 다물렸다. 오이카와는 소리 없이 웃었다.

 거짓말투성이 당신은, 거짓말에 능숙하진 못하다.

 

 “카게야마씨, 이제 다들 당신이 수상하대요.”

  “.”

 “하지만 정작 나는 당신이 많이 수상하지 않아.”

 “.”

 “아니, 여전히 정체가 수상하긴 한데. 조금 달라.”

 

 그의 거짓은 모두 헐거워서 금세 들키곤 때문이었다. 또한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던 순간, 정작 당신은 스스로를 드러내며 날 구했다. 그냥 이웃남자일 뿐인. 귀찮을 수도, 도망치고 싶은 상대일 뿐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했다.

 왜 그랬어? 오이카와는 이미 가까워져 있는 거리를 더욱 좁히며 소리 없이 질문해 보았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피부가 들썩거리는 것이 보일 것처럼 큰 박동이었다. 귀는 빨개져 있었고, 동공은 커다랗게 확대되어 있었다. 그 안에 자신이 보였다. 이것이 답일까. 나 때문일까. 내가 당신의 옛 애인이랑 닮아서? 아니면, 나여서? 요원의 긴 손가락이 몸을 타고 올라가 뺨을 잡았다. 피할 수 없이 고개를 고정시켰다.

 

 “나 정말 감이 좋은 사람이거든요.”

 새파란 빛깔에 흰색을 조금 섞어 부드럽게 만들면 나올 수 있을 것도 같은 오묘한 청안 안에서 불안이 빛났다. 오이카와는 이렇다 할 표정을 짓지 않고 그를 내려 보았다.

 

 “적어도 당신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

 “.”

 “맞아요?”

 

 손가락으로 뺨을 조금 두드리면 눈동자 속에 섞인 색깔들이 스노우볼처럼 흩날렸다. 보기가 좋아서 그는 숙이려던 고개를 못 숙이게 잡아두었다. 돌려 버리는 것도 힘을 주어 금지했다. 그렇게 손 안에 꽉 잡힌 얼굴은 짜증보다는 울상에 가까웠다.

 

 “제가 꼭 대답해야 합니까?”

 “.”

 “당연히.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수의사일 뿐이에요. 누구를 해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잖습니까.”

 

 수의사는 굉장히 힘든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싸한 대답이었다.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요원은 이제 놔주길 바라는 상대의 의중을 가볍게 무시했다.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그러면.”

 

 오히려 더 힘을 주었다.

 

 “지금 내가 키스하는 건 어때요. 싫어요?”

 “그건 싫습니다.”

 

 빛이 흔들렸다. 또다시 남자의 귀가 빨개져 있었다.

 

 “아, 거짓말.”

 

 어리숙한 거짓말. 오이카와는 온갖 종류의 거짓말이 푸르게 묻어 있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이것은 그들의 세번째 키스였다. 이번에도 고분고분히 자신에게 몸을 맡기는 수의사를 끌어안으며 요원은 생각했다. 

 모든 거짓이 그러하듯이 달콤하기 그지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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