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의사동기와 조폭이야기>
츠키시마는 헤드셋을 낀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다. 볼륨은 최대치로 올라가 있어서, 원래는 평안하기 그지없어야 하는 선율이 웅장하게 머릿속을 두드린다. 사실은 고막을 아프게 할 정도 커서 이미 엉망이 된 합주였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른 생각에 정복당할 것 같아 츠키시마는 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사실은 며칠 째, 불면의 밤이었다.
며칠에 걸쳐 누적된 피곤에 무의식적으로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떴을 때, 우연히 인터폰에 불이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연결버튼을 누르자 조그만 모니터 너머에는 동기의 얼굴이 있었다. 이 시간에 온 것이 새삼 놀랍지는 않았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싶은 건지 더 떨어져 있고 싶은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가만히 화면을 노려보고 있는데, 팍, 하고 화면이 꺼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한숨이 지어졌다.
“....설마.”
헤드폰을 목덜미로 끌어 내리자, 머리를 장악하던 소리가 멀고 먼 곳으로 사라진다. 대신 엄청나게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설마 계속 저러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아무리 골똘히 바라봐도 낮은 화질의 화면에서는 표정이나, 얼어버린 피부 같은 것은 알 수 없었다. 옆집에서 귀찮은 클레임이 걸려 오기 전에 츠키시마는 음악을 끄고, 느리게 몸을 움직여 문을 열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일단 문은 열었지만, 츠키시마는 옆으로 비켜서지 않고 기대어 섰다. 그리고는 여전히 팔짱을 낀 자세를 고수하며 동기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았다. 집에서 입는 편한 복장에 맨발 슬리퍼 차림이었다. 차는 끌고 다니지 않는 동기의 사정과 거리는 꽤 되는 두 집 사이를 생각해보니 잔소리가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츠키시마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나 술 마셨어.” 시작은 동기가 했다.
“알아.” 동기의 옷자락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모를 리가 없다. 원래부터 싫어하던 냄새였고, 지금은. 지금은 혐오에 가깝다.
“많이 마셨어.” 속도 모르고 하는 소리에,
“...그럼 이제 집으로 가면 되겠네. 여기가 아니라.”
냉정하게 대응해 주었다. 애초에 보는 눈을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아예 다른 사람이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에서의 만남은 처음부터 날이 잔뜩 갈려 있었다. 츠키시마는 자꾸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평소와 같이 만들기 위해서 계속 신경 써야만 했다. 동기의 단단하게 다물린 입가 또한 한일자처럼 직선이다. 하지만 어딘가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어서 그게 새삼스럽게 화가 났다.
“집에 가서 자든지, 아니면... 자든지.”
계속 냉정해지려는 마음과는 달리 빈정거리는 말이 자꾸 튀어나갔다. 츠키시마는 똑같은 말이 주는 다른 상황을 떠올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뱉은 침에 얼굴을 맞는 기분이었다. 당연하게도 동기의 표정 또한 한층 더 어마어마해졌다. 모든 것이 사실은 지나친 억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자신은 오늘 고장 난 자동차였다. 아니, 그 때부터 그랬다. 매일매일 손질하고, 점검하여 문제없이 굴러가던 기계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로 퍼져 버렸다. 부릉부릉 소리만 나고, 연기만 내뿜으면서 원하는 대로 멈추지도 가지도 못한다.
“나 속상해서 많이 마셨어.”
“정말 술주정뱅이가 다 됐네.”
“그 날도 속상해서 마셨어. 그리고 사실 너 때문이야.”
“...나 때문이라고?” 그래, 라고 짧게 대답하면서 카게야마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츠키시마는 점점 더 동기가 알 수 없어졌다. 나?
“오늘도 너 때문에 속상해. 그래서 술을 마셨으니까 돌아가면 또 쿠로오씨랑 잘지도 몰라. 아, 그리고 쿠로오씨가 돌아왔어.” 이건 그냥 술 취한 자의 횡설수설같이 들렸다. 그러나 중간에 끼어 있는 말이 사정없이 마음을 찌른다. 잠깐 풀리려던 마음이 도로 와르르 무너지고 거대한 돌산이 되어 내려앉았다.
“...그러던지.”
신랄한 대답과 함께 닫히려는 문을 동기가 두 손으로 재빨리 잡았다. 훅 끼쳐드는 알코올의 향에 희미하게 샤워젤 향도 섞여 있었다. 언젠가 한번 자신의 몸을 킁킁대더니 그 후로 어디선가 구해서 계속 사용한 것이었다. 20살 후반의 남자가 사용하기에는 다소 간지러운 향인지라, 정작 츠키시마의 것은 다른 것으로 바뀐 지가 꽤 되었지만 츠키시마는 그 향이 동기에게는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바꾸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쯤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말해준 적은 없었다. 카게야마가 고개를 들자 머릿결을 타고 향이 조금 더 진하게 전해져 왔다. 그에 화가 누그러지려고 하다가도, 이 얼굴이 누군가와 몸을 나눴을 생각을 하면 다시 번뜩 하고 꼬리를 휘둘러 왔다. 맞으면 꽤 아픈 가시 박힌 꼬리였다. 츠키시마는 문을 확 당겨버렸다. 그 통에 좁아지는 틈이 모조리 닫혀버리기 전에 온 몸으로 문이 닫히는 것을 틀어막은 카게야마가,
“그치만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갈 거야.”
라고 말했다. 츠키시마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아직 남은 말이 있는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그러나 말은 꺼내지 못하고 입술만 몇 번이나 달싹거린다. 항상 그랬듯이 의사는 그 망설임을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다. 침묵 속에서 문을 꽉 잡고 있던 분홍색 손톱이 결국 하얗게 질렸다. 그런 후에야 결심이 선 눈동자가 츠키시마를 꿰뚫어 버릴 듯 바라보고. 그리고.
“그리고 너랑 잘 거야.”
***
“날 그 남자랑 같은 취급하지 마.”
츠키시마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누구처럼 술김에 자고 그러는 사람이 아니야. 그런 질 나쁜 장난을 안 받아줘.”
“이게 질 나쁜 장난이야?”
“뭐?”
“아까 낮에는 네가 기분 좋게 해 달랬잖아. 그게 더 질 나쁜 장난이지.”
“어디서 알려준 말 그대로 읊지 마.”
“...어떻게 알았지?”
청산유수처럼 말을 굴리던 동기는 입을 딱 벌리고 경악했다. 쿠로오가 가르쳐 준대로 잘 흘러가는 대화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상대는 한 수 위였다. 하지만 사실은 넘겨 짚어봤던 것일 뿐인 츠키시마는 ‘정답입니다’를 솔직하게도 외치는 동기의 표정에 제대로 골이 나버렸다. 신경질적으로 툭 치는 손길에 고스란히 밀려나는 동기의 얼굴을 보고,
“내일 늦지나 마.”
라는 말을 끝으로 정말 문이 닫혔다.
전자식 도어 키가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는 가만히 서 있었다. 다시 초인종을 누르려고 올라가던 손가락이 멈칫하더니 버튼 주변만 배회하다가 누르지 못하고 다시 떨구어 졌다. 더 하면 정말 화를 낼 거 같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의사는 결국 몸을 돌렸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띵, 주머니의 핸드폰이 문자 도착을 알려 왔다. 찬바람이 부는 복도 가운데서 손을 후후 불어가며 화면을 열어보았다. 쿠로오였다.
[성공? 실패?]
[츠키시마는 여전히 제가 이제 완전히 싫은가 봐요.]
[‘여전히’와 ‘이제’는 같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닌데, 의사선생]
[꼭 츠키시마처럼 말씀하시네요.]
[실패니까 돌아오면 나랑 자는 거야?]
[그런 거 아니었어요.]
[내기 아니었어?]
[아니었어요. 그리고 저 지금 뭔가 엄청 부끄러워요. 원래 이런겁니까?]
[나는 내기였는데.]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던지는 괴상한 흐름이었다. 문자판을 만지작거리며 뭐라고 보낼까 고민하던 차에 다시 한 번 띵-하고 음이 울렸다. 확 밝아진 화면에는.
[그러니까 기대하고 있을게, 토비오♡]
기가 막힌 답문에 입을 삐죽 내밀고 우-하고 짧게 소리를 냈다. 이래서는 집에 돌아가기도 힘들어서, 카게야마는 잠시 근처 아무 숙박업소를 가야 할지, 병원으로 가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와이셔츠 같은 거 여분을 들고 다니지 않았고, 지금 차림으로는 숙박업소나 수위실 중 어느 곳도 통과하기도 힘들 거 같았다. 어쩌지. 두 손으로 쥐고 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하던 고민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동기에게로 넘어갔다. 정말 어쩌지.
“어렵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 흔들고는 별이라곤 없는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자신에게 츠키시마는 어려워서 마치 답이 몇 개인지 알려주지 않는 문제 같았다. 하나일 수도 있고, 모두가 답일 수도 있는 난해한 문제. 잠시 풀이방법을 더 고민하느라 서 있는 동안, 쿠로오에게서는 그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건지 이제 맨발은 아플 정도로 차가워졌다. 발뒤축을 세워 살짝 구르고, 어디든지 가자라고 결정한 카게야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뒤에서.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잇는 가벼운 걸음소리에 돌아보기도 전에 커다랗고 건조한 손이 손목을 잡고 몸을 돌려세운다. 다음 순간, 방의 온기로 덮여져 있는 폭신한 홈웨어 속으로 파묻힌 코끝에 기분 좋은 섬유제의 향이 흘러들어왔다. 으와악! 진심으로 깜짝 놀란 소리를 내는 입 안으로는 옷감에 붙은 짧고 부드러운 실들이 밀려들어온다. 이미 꽉 끌어 안겨져서 틈 없이 밀착된 몸을 더듬어서 등을 껴안은 손이, 더 힘을 주어 날개 뼈까지 껴안고, 거기서 또 힘을 주어 어깨까지 껴안아 왔다. 구겨질 것처럼 몸이 꽉 조여들었다. 자신은 안겼다기보다는 상대의 양팔과 몸 사이에 끼인 것 같았다.
“ㅡ으...”
힘이 빠진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졌다. 시선을 내려 문자발신인의 이름을 본 츠키시마는 발끝으로 그것을 걷어차 버렸다. 매끈한 바닥 덕에 볼품없이 밀려가 모서리를 벽에 박더니 핏, 하고 전원이 꺼졌다. 만족이 가득한 눈빛을 지으며, 동기의 빨갛고 차가운 귀에 볼을 대고 누르자 온기 때문에 사르르 풀려가던 어깨에 다시 힘이 들어간다. 그런 어깨에 턱을 올린 채로 츠키시마는 불만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 그 남자한테 배워온 걸 나한테 쓰는 거 엄청 기분 나빠.”
“그게...응, 미안해.”
뭐라고 덧붙이려던 것을 그만두고 카게야마는 순순히 사과했다. 동기의 익숙한 온기가 너무 좋아서 입가가 엉망으로 풀어졌다. 츠키시마는 여전히 카게야마를 껴안은 채, 한 손만 올려 동글동글한 뒷머리를 자신에게 더 꾸욱 눌렀다. 기분은 나쁜데.
“그래도 역시 보내진 못 하겠어.”
여전히 예민한 목소리에는 분함이 잔뜩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보다 진심일 수는 없을 것이다. 카게야마는 동기의 대답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세웠다. 천천히 몸이 떨어지고, 츠키시마는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는 동기의 눈동자를, 자신 역시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리고.
"가지 마."
라고 말했다. 기다릴 것도 없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그 바보같은 반응은. 그 남자가 밀당같은 거 안 가르쳐줬어? 라고 투덜거리면서도 동기는 자신의 볼을 두 손으로 감싸잡았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있었다. 카게야마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고개가 들리고 천천히 입술이 닿았다. 호흡이 섞였다.
아직 수술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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