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10
설 전
(War of Words)
10-1
눈동자색이 뭔지도 알아보지 못하게 활짝 웃는 얼굴이 이렇게 얄미울 수도 있나? 오이카와는 이마에 네다섯 개씩 돋아나고 있는 힘줄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격식에 모자라거나 넘치는 법 없이 깍듯하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서로의 나라를 걱정하고, 테러에 대해 공동의 분노를 공감하면서 수박 겉핥기를 할 때에는 배경에 꽃이 피어날 것처럼 공손하더니, 카라스노의 일을 물어보면서부터 상대의 태도는 삐딱선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그것도 당당하게.
“이야.” 히나타에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에 대해 설명하자 침착하게 안경을 벗고 알을 한번 닦아내고는 꺼낸 첫마디였다.
“가뜩이나 바쁜 제가 이런 말이나 들으려고 여길 온 건가요?”
오이카와는 잠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지금 아오바죠사이의 요청으로 '파견해주었던' 카라스노의 센티넬이 깨어날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유감스럽지만ㅡ”
“감사함에 몸을 둘 곳이 없네요. 유감이라. 누구나 제일 쉽게 표하는 유감이지만 카라스노가 무슨 힘이 있나요? 그저 감사해야죠.”
“그런 뜻이 아니라? 오바죠사이가 아닌 테러집단이 벌인 일이라서 할 수 있는 게..”
“그래서 범인은 잡으셨나요?”
“...아직?”
“조사는 하고 계신건지..?”
“최선은 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특별히 말해줄 만한 소득이란 건”
말끝을 길게 늘이며 오이카와는 보좌관의 얼굴을 돌아보았지만, 딱히 내려진 지시가 없던 상황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츠키시마는 지루하다는 듯이 턱을 살짝 괴어 놓고는.
“하아...”
들으라는 듯 크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는 저런 식의 표정을 자신에게 짓는 타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떠먹여 주지 않으면 밥 한 숟갈 먹지 못할 것처럼 무능한 사람을 보는 듯 한심하고 고까운 표정을. 츠키시마는 침착한 태도로 찻잔을 들어 크게 한 모금 마셨다. 목울대가 크게 한번 아래위로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는 거 외에 딱히 오이카와가 할 수 있는 일도, 말도 없는 상태였다.
“겪은 게 많은지라 오이카와상의 입장도 이해는 합니다. SS센티넬이라고 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닐 테니까 어쩔 수 없죠.”
오이카와의 손가락이 찻잔의 손잡이에 걸어졌다.
“그럼 아시는 것 위주로 설명 좀 해주세요.”
몇 번이나 신경을 썼지만 찻잔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설마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으시겠죠?”
오이카와는 침착하게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뒤에 천천히 활짝 웃어보였다. 바쁜 일이 따로 있다며 오지 않은 이와이즈미가 불현듯 보고 싶었다. 이와짱. 나 오늘 이 사람을 죽여 버릴지도 모르겠어.
10-2
“미천한 일개 S급 센티넬이 이해하기로는 결국 폭탄테러의 배후는 테러집단으로 의심되는 것 맞으나 밝혀진 바가 없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SS급 센티넬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카라스노의 센티넬 '히나타 소요'는 그 자살폭탄테러에 심한 부상을 당했으며, SS급 회복계 센티넬을 동원해서 고치고는 있지만 현재까지 큰 차도가 없다는 것이군요.”
오이카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빨라 설명하기도 쉬운 것이 저 사절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이카와님의 가이드 역할을 대체하기로 카라스노의 가이드이자 법적으로 미성년자인 '카게야마 토비오'와 합의를 보았고, 우연찮게 얼마 전 신체적 각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센티넬가이드 협약에 의거하여 카게야마 토비오는 아오바죠사이 소속으로 변경하고자 한다.”
안경이 빛을 교묘히 반사하여 반짝였다. 그 반사된 빛 때문에 너머의 눈동자가 어떤 감정을 비치는지 오이카와로서는 볼 수 없었다. 오감을 넘어선 초감각의 센티넬이라고 해도 사람 속을 확인할 길 또한 없으니 사절에게 미리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기색을 지을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결국 오이카와는 애꿎은 찻잔만 다시 들어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셨다.
“전후사정과 관계없이 중요한 부분을 강조해보면, 오이카와상은 법적으로 미성년자인 가이드와 각인을 맺으셨단 말이네요.”
츠키시마는 양 손을 들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혹시 취향 자체가 그 쪽 인건 아니시겠죠?”
“...아쉽게도 오이카와상의 취향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가슴이 큰 미인라서 말이야.”
“아, 물론 아니시겠죠. 그건 범죄니까요. 아오바죠사이의 SS센티넬이신 오이카와상이 그런 범죄자와 동급이라니..그럴 리는 없다고 저도 믿고 싶습니다. 게다가 전쟁도 아닌 지금 억지로 맺은 미성년자와의 각인은 나라를 막론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 아닙니까.”
“...범죄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건 착각인가?”
“세 번밖에 안 썼으니 착각이겠네요. 오이카와상.”
"그나저나 굳이 그 단어가 귀에 박히셨다니 유감입니다.“
허허실실하게 웃으면서 잽을 날리는 노련한 모습으로 주도권을 놓지 않는 것은 오이카와가 생각했던 카라스노와 크게 달랐다. 어디서 이런 새끼를 찾아 보냈지. 그가 경련이 일어나는 입가를 잠재워 고상하게 웃음을 지어 보이는 와중에 상대는 반듯하게 자세를 고치고 테이블 위에 두 손을 마주잡은 채, 팔꿈치를 괴었다. 빛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에 따라 표정의 색이 바뀌고, 반사된 안경 빛이 사라지면서 금빛이 감도는 노란색 홍채에 이채가 깃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몰락한 카라스노에서 감히 차강의 나라를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아오바죠사이는 참 이득을 많이 봤네요.”
이제야 그가 품고 있는 확신이 날렵하게 혀를 타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야 모르지만, 소설 같은데서 많이 나오는 말 있잖아요. 범인을 모르겠거든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을 찾아라.”
오이카와는 담담하게 그것을 마주했다. 츠키시마는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맺음말을 던졌다.
“이 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10-3
“글쎄? 오이카와상은 잘 모르겠는데? 그리고.”
역시 색이 변해버린 얼굴로.
“굳이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라고 돌려주었다. 둘은 한참이나 서로를 날카롭게 바라보며 침묵에 잠겨 있었다. 무언가 터져나갈 것처럼 아슬아슬하면서도 서리처럼 냉랭한 분위기였다. 이와이즈미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참석한 보좌관들만이 안절부절 양 쪽의 눈치를 살필 뿐이다. 눈을 먼저 깜박이는 것조차 상대에게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기 싸움이 이어진다. 꽤 오랜 시간의 대치 후에, 츠키시마는 한 쪽 눈썹만 살짝 치켜 올리고 테이블에 가까이 붙였던 몸을 의자에 기대며, 좀 더 편히 고쳐 앉았다.
“뭐, 아오바죠사이의 SS 센티넬이 그러시다니 별 수 있나요.”
“잘 생각했어. 카라스노의 (망할) 사절단. 오이카와상 기분이 막 나빠지려던 참이었거든.”
“그렇다고 해도 카게야마의 일은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책임을 물을 거지만, 그 전에 우리의 센티넬부터 돌려받아야겠습니다.”
“말했잖아. 치비짱은 가사상태라고.”
“그렇다고 여기 둘 수 있나요. 데려가죠. 카라스노로.”
“가는 길에 죽을 거예요? 게다가 데려간다고 해도 카라스노에는 회복계 유능한 센티넬도 없을 거고, 어쨌든 아오바죠사이 책임도 조금 있으니까 한동안은 여기서 치료를 받게 해줄게.”
“뭐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릴까?”
츠키시마는 웃는 얼굴로 오이카와를 응시하면서 손목에 찬 시계에서 작고 날카로운 칼을 꺼내들어 제대로 고쳐 쥐었다. 두 사람의 일에 방관적이었던 주변인의 긴장이 순식간에 깨지고 험악해진 표정의 보좌관이 츠키시마를 저지하려고 달려들었다가, 오이카와의 바람에 의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오이카와상이 저런 거에 다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가만히 있어. 와타리.”
검지를 빙글빙글 돌려 바람을 가지고 놀면서 오이카와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애초에 당할 리가 없다는 오만한 표정에 태연하게 웃어 주면서 츠키시마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칼날의 끝을 그대로 자신의 팔에 찔러 넣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저도 이런 바보 같은 쇼는 별로 취향이 아닙니다.”
칼날 끝이 살갗 사이를 파고들며 사라졌다. 벌어진 틈으로 붉게 번져나가는 피는 팔뚝을 타고 흘러내리며 츠시키마의 와이셔츠 소매를 적셔나갔다. 입가만 살짝 한번 떤 오이카와는 표정 변화 없이 그 모양을 지켜보았다. 칼을 다룬 다기보다는 메스를 다루는 것 같은 손짓으로 칼날이 뽑히고, 다음 순간 빠르게 아물어가는 상처가 보였다. 혈관이 이어지고, 근육이 생성되었으며 피부가 그 위를 고르게 덮어간다. 어떻게 사람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려는 듯이 거침없이 일사천리로 상처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칼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칼날이 오이카와 쪽을 향해진 채였다.
"우와..“
그리고 이번에 비꼬는 감탄사를 내뱉은 것은 오이카와 쪽이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참 많네. 내게 온 보고서에 따르면 센티넬의 능력은 뛰어나게 좋은 두뇌였는데 말이야. "
“하하. 그렇게 되어 있나요?”
츠키시마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정말로 멋쩍어서 내는 웃음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의도적인 웃음이었다. 그는 거칠게 접혀 올라갔던 소매를 차분하게 정리하고 탁탁, 옷의 선을 다시 잡았다.
“원래 머리는 타고나는 거니까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웅웅, 바람이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불었다. 날벌레처럼 귀찮은 소리를 털어내며 고개를 들자, 오이카와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토비오쨩 때도 조금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카라스노는 감추는 게 참 많네. 마침 오이카와상도 이럴 때 쓸 수 있는 재미있는 말을 하나 알고 있어.”
그는 자신에게 향한 칼날을 손가락으로 툭 쳐서 반대로 돌렸다.
“감추는 것이 깊은 사람은 믿지 말라.”
“...”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해?”
10-4
서로에 대한 날선 경계를 나누는 것으로 종결된 회담이었지만 어쨌든 츠키시마는 절차를 밟아 히나타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카게야마에 대한 면회는 묵살 당했다. 이곳으로 올 때부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 번은 만나야 했기에 새삼 방법을 골몰하려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금방 흥분해서는. 츠키시마는 혀를 가볍게 차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짐도 모두 풀지 않고 달려온 곳에는 한 때, 카라스노의 희망이었던 것이 산산이 망가져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빈 손목을 잠시 잡은 츠키시마는 눈을 꾹 감고, 목을 치고 올라오는 감정을 꾸역꾸역 다시 밀어 넣었다. 낮지만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는 심박 수와 혈압, 그리고 체온은 오이카와가 말한 것처럼 혼수상태가 맞았다. 다행히도 자신이 정신에 직접 보내는 자극에 환영같이 흐릿한 반응을 돌아오는 것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SS센티넬이 치료하고 있다는 것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마도 그런 말로 바보 같은 왕님을 옭아맸겠지. 너는 또 속았을 거고. 츠키시마는 돌아서며 아직까지 치료실 입구에 감시하듯 기대서 있는 오이카와를 마주했다.
“생각보다 양호하네요.”
“시체보다는 나은 편이니라는 블랙조크인가.”
“뇌랑 심장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그건 또, 무슨 의도로 하는 표현?”
약간의 피곤함만 더해졌을 뿐, 냉랭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이야기하기에는 꽤나 구체적이고 잔인한 표현이었다. 그런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츠키시마는 히나타에게 투여하고 있는 약물의 종류를 파악했다. 나쁘지 않은 조합이지만, 약간 바꿀 필요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는 약물 주머니에 반투명하게 비치는 오이카와의 불만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상, 말도 맞는 게 있네요. 지금은 못 데려갈 것 같군요.”
“나에 대한 평가가 점점 심해지는 건 분명 착각이 아닌 거 같은데요, 사절쨩.”
“그러니까 당분간 저도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거절해. 당장 돌아가. 치비쨩은 이동이 가능해지는 대로 보내줄 테니까.”
되묻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내질러진 말에 츠키시마의 단정한 이마 위로 곱게 힘줄이 돋았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다시 한 번 안경을 내려 한번 닦고는 반듯하게 고쳐 썼다.
“왜 거절하시죠?” 단순하고도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이었다.
“이번 사절단의 방문요청은 테러에 대한 카라스노의 피해 상황만 확인하는 거라고 되어 있었어. 이미 확인은 끝났으니 돌아가. 차후에 다른 목적의 방문에 대한 재요청을 한다면 생각해볼게.”
“아, 그런가요?”
츠키시마는 짜증이 날 정도로 공손하게 되물었다.
“말씀대로라면 카게야마 토비오 역시 카라스노의 피해상황입니다. 그럼 그 쪽을 확인하게 해 주시죠. 공문대로 모두 확인하고 나면 돌아가서, 카라스노의 대책을 세울 테니까요.”
“그것도 안 되겠는데? 오이카와상은 각인을 맺은 가이드를 다른 센티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 아오바죠사이에 남는 것을 허락하거나, 카게야마 토비오와 면회를 허락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 주시죠. 그 후엔 남으라고 사정하셔도 돌아가 드리겠습니다.”
“아니, 둘 다 안 돼. 당장 아오바죠사이에서 나가. 명령이야. 비리비리 사절쨩.”
“거절합니다. 제게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은 카라스노의 수장에게만 있습니다.”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츠키시마 옆에 놓여 있던 의료도구함이 벽에 부딪쳐 폭발하듯 부서졌다. 난리 통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츠키시마의 손등을 그어 내렸다. 실금같이 흘러내리던 피는 능력에 의해 즉각적으로 멈췄지만 팽팽해진 공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못하고, 여전히 이곳을 데우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부들부들 떨리려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고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카라스노와 아오바죠사이는 ‘아직’ 연합 관계에 있습니다. 이 균형을 깬다면 아오바죠사이로서도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사절쨩은 카라스노를 너무 과대평가하네.”
“분노한 카라스노를 뒤에 놓고 싸우고 싶진 않으실 테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
“혹시 압니까? 아오바죠사이가 시라토리자와와 전쟁이라도 벌일 때, 카라스노가 딴 생각이라도 먹을지.”
“궁지에 너무 몰진 말라는 협박으로 들리는데?”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오이카와는 팔짱을 끼고 기댔던 몸을 바로 세웠다. 힘으로 내리누르는 것도 통하지 않고, 교묘하게 말을 돌리는 것은 칼같이 잡아내어 꼬리를 잡아 온다. 감탄할 만큼 머리가 좋지만, 좋은 머리가 아까울 정도로 감정적인 면도 있었다. 원하는 것은 얻어가겠지만, 너 역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까지 많이 보여주었을 터, 모두 가져가진 못해도 자신에게 결과가 많이 아쉬운 게임은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느리게 박수를 쳤다.
“참 유능한 사절단을 보냈네. 좋아, 아오바죠사이에 남아서 치비쨩의 치료를 맡도록 해.”
츠키시마는 말없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자신보다 큰 쪽이 숙여오는 것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오이카와는 생각에 잠겼다. 적으로 두어 하나도 좋을 것이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런 존재가 자라나는 것을 보기 보다는 떡잎부터 자근자근 밟아버리는 것을 선호하는 쪽이었다.
10-5
“으아!!!! 짜증나!!! 빌어먹게 재수 없어!!!”
이와이즈미는 불시에 자신의 방문을 차고 들어온 오이카와의 말을 고대로 그에게 돌려주었다. 짜증카와, 재수카와, 빌어먹을카와까지만 들어준 뒤에 오이카와는 바람을 사용해 베개를 이와이즈미의 뒤통수에 집어던졌다.
“카라스노에서 대단한 사신을 보냈나보지. 이렇게 짜증부리는 모습은 오랜만인걸.”
“감탄하지 말아주겠어? 그 츠...츠키시마인지 츠키시바인지..”
“츠키?...”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찡그렸다. 얼핏 들어본 것 같은 기시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더 생각해보기도 전에 이와이즈미의 생각은 오이카와의 생떼에 막혀버렸다. 오이카와상을 생각하는 건 아무도 없다고 억울한 듯 소리치며 당연하게 침대로 기어 올라가 몸을 웅크리고 우는 시늉을 낸다. 우스운 꼴이었다. 일인용 소파에 앉아 독서 중이었던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눈썹을 힐끗 올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이와짱, 이렇게 된 거 카라스노를 무찔러 버릴까?”
손에 잡히는 대로 머리맡에 놓여 있던 박하사탕을 으적으적 씹으면서 오이카와가 중얼거렸다.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은 초반뿐으로, 그 역시 몇 번 되돌려 주었지만 먼저 맞아버린 상처는 자존심에 상처를 남겼다. 그에 힘입어 하얗고 딱딱한 박하사탕이 속절없이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갔다.
“명분은 카라스노에도 있어.”
“나도 알아. 이대로 쳐들어가면 시라토리자와의 제왕이 질서 어쩌고 하면서 일어나겠지. 그런 빌미를 제공할 수는 없지.”
“....”
이와이즈미는 말없이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부들부들 떨면서 오이카와는 박하사탕 3개를 해치우고, 연이어서 아무렇지 않게 초콜릿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부어오른 볼을 손바닥으로 괸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화를 냈다. 다이나믹한 표정 변화였다.
“오이카와. 너 그 사신을 반 토막 내고 달려온 건 아니겠지?”
“그러고 싶었지.”
“...”
“하지만 참았어.”
그는 책을 덮고 몸을 고쳐 앉아 오이카와를 마주보았다. 깔끔하게 정리된 침구 위에서 그의 오래된 친구는 초콜릿에 열중하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잘생긴 편인 옆선이 은은한 빛을 받아 나이보다 조금 더 성숙한 분위기를 내었다. 이와이즈미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이 골똘하게 그 모양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먼저 박살내야 하는 쪽이 있어서.”
오이카와는 서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맞은편 벽의 어디 즈음을 응시했다. 이와이즈미는 무겁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우선은 우시와카짱이 있으니까 말이야.”
자유롭게 된 만큼, 마음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똬리를 틀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것이었고, 오이카와에게는 북극성처럼 확실하고 움직이지 않는 목표가 있었다. 패자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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