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의사동기와 조폭이야기>

 

  그를 지칭하는 말은 많았다. 외부적으로 그는 최연소로 학위를 획득한 천재 외과 의사이고, 뇌신경외과의 대가이면서 동시에 흉곽외과에 대한 전문 자격증을 가진 전대미문의 실력자였다. 물론 내부에서는 좀 다르게 그는 수술실의 폭군이라던가, 제왕이라던가 등의 좀 멋진 표현이나, 꽤 높은 빈도로 ‘수술에 미친놈’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너무해요. 제가 흑, 그렇게, 흐윽, 읍윽.. 심한 실수를..흐윽. 한 것도 아닌..데”

 그 명성에 비치는 서광을 조금도 줄일 생각이 없는지, 오늘도 기어코 한 명을 울려 버린 모양이었다. 츠키시마는 복도 창가에 기대어 몇몇 사람들이 둥글게 둘러싸 토닥이고 있는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다음 수술을 준비하며 잠깐 있는 휴식시간이었는데 조용히 쉬기에는 이미 틀려 버린 듯 했다. 간호사들과 동료 의사의 잡담에서 그의 동기는 놀라운 지분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분의 대부분은 험담이었다. 물론 자신의 동기는 1만큼도 신경도 안 쓸 이야기들이긴 했다. 그 작은 머리 속에는 수술, 수술, 그리고 또 수술이었다. 츠키시마 자신도 사교성이라곤 없다는 평을 듣지만, 그 동기는 조금 더 심한 편으로 이 병원에서 나오는 모든 욕을 한번씩은 들어보고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다 알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흑, 쫓아내시기까지.흐윽, 허엉. 없잖아요.”

 너무 심했네.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등등. 츠키시마는 마시던 커피를 마지막까지 들이키고는 빈 종이컵을 와그작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필이면 쟤를 울렸네. 병원장의 고명딸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어린 간호사였다. 그냥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높은 실력만으로는 커버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거고. 츠키시마는 허리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자신의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술 후에 나와 보니 게시판에 공고가 하나 생겨 있었다. 근신처분에 대한 내용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자신의 동기인 ‘카게야마 토비오’에 대한 것이었다.

 

 

***


  “왕님.”

 츠키시마는 탈의실 가운데에 놓여 있는 긴 의자에 등을 보이며 앉아 있는 동기를 불렀다. 움찔하면서도 돌아보지 않는 동그란 뒤통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빤히 들여다보인다. 근신처분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정갈하고 칼같이 다려져 있는 하얀색 가운 옆에는 수술복장이 잔뜩 구겨져 나뒹굴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발끝을 써서 수술복을 밀어내고 옆에 앉았다.

  “일주일 동안 수술 못해서 심심하겠네.”

 츠키시마 나름의 위로였다. 어차피 위로에는 재능이 없는 자신이고, 상대방도 위로를 알아들을 리가 없는지라 되는대로 말을 던졌다. 반응은 없이 뭔가에 열중하여 숙여 있는 고개를 따라간 시선 끝에 기가 막힌 것이 닿았다. 허공에다 뭐라도 있는 듯 놀려지는 동기의 헛손질이었다. 코끝에 잘 걸려 있던 안경이 살짝 기울어졌다. 카게야마는 지금 수술을 복기하는 중이었다.

  “여기가 잘 안 됐어.”

 마침내 그 순간에 닿았는지, 열중한 목소리가 잔뜩 잠겨 혼잣말을 했다. 츠키시마는 위로를 포기하고 춤을 추듯 움직이는 손끝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는 손톱이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을 넘긴 듯 손놀림이 다시 가벼워졌다. 무릎에 얌전히 손이 내려지고, 카게야마의 고개는 그제야 자신에게 돌려졌다.

 “뭐라고? 츠키시마?”
 “...근신처분 못 봤어?”
 “아, 그거 봤어. 잘 안된 부분도 있었지만 잘 끝냈는데 왜 근신이지?”
 “나한테 질문하지 마. 너한테 그걸 설명하느니 한 달 내내 퇴근 없이 일하는 게 낫겠어.”

 너 빼고는 다 알아. 라는 말은 잠시 삼켜두기로 했다.

 “내일 하고 싶었던 수술이 있었는데. 그것만 하고 근신하면 안 되나?”

 맹꽁이 같은 소리를 하는 카게야마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근신처분은 머리를 식히라고 내려온 것이지만 그건 처음부터 윗사람들의 꿈에 지나지 않았다. 수술실의 폭군은 단지 자신이 수술실에서 쫓겨났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츠키시마는 그의 일주일이 눈앞에 그려졌다. 풀이 죽어 멍 때리고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집에서 섹스토이로 생산된 인형을 가지고 접합하고, 풀어내고, 다시 접합하는 것을 반복할 것이다.

 “왕님, 섹스토이를 샀으면 차라리 섹스를 해.” 라고 말했지만 카게야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 사실은 인형회사에 전화해서 안에 장기 모형을 채워주면 안되겠냐고 문의했었어.” 라고 대답해오자 아예 할 말을 잃었다.
 “답은?”
 “경찰에게 연락이 왔어. 아무래도 신고 당했던 거 같아.”
 “....나라도 신고했어.”

 츠키시마의 동기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근신이 3일째 되던 날에 걸려온 전화에서 카게야마가

 “츠키시마. 나 어제 수술했어.” 라고 말했을 때,
 “이번엔 인형 어디를 박살냈어? 후두부? 빗장뼈?”

 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드물게 망설이면서 잠시 말이 없던 동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해 왔다.

 “진짜 사람. 어제 우리 집 앞에 누가 쓰러져 있어서 내가 해 버렸어.”

 츠키시마는 침착하게 핸드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카게야마 토비오가 맞았다. 이 미친 왕님이 기어코. 라고 생각하며 의사가운을 벗어던졌다.

 “꼼짝 말고 집에 있어.”
 “응.”

 대형 사고를 친 주제에 고분고분하게 대답 하지 말라며 츠키시마는 짜증을 냈다. 급하게 확인한 스케쥴표에는 다행히 급한 수술은 없었다. 평소와 달리 서둘러 옷을 입느라고 자꾸 손가락에서 단추가 미끌어 진다. 오히려 늦어지는 준비에 초조함이 더해져서 다소 거칠게 운전할 수밖에 없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병원 가까이에 얻어둔 오피스텔은 외진 곳에 위치했다. 창녀촌을 끼고 있어, 그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조직 폭력배도 많은 곳이었다. 극구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두었는데, 멱살을 잡아끌어서라도 데려와야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폭풍처럼 주차하고, 구르듯이 올라가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문이 벌컥 열렸다. 막 씻은 듯 젖어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동기는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딨어?” 숨을 몰아쉴 틈도 없이 몰아친 질문에,
 “일단 내 침대에 눕혀놨어.” 아무 근심 걱정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츠키시마는 찡그린 인상을 펴지 않고,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안 쪽 방을 찾아들어가는 뒤를 강아지처럼 따라오면서 동기는 “수술은 잘 됐어.” 따위의 말이나 해 댔다. 그야말로 귓등으로 흘려들으면서 닫혀 있는 방문을 열자, 안에서는 매캐한 담배 연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츠키시마를 덮쳐왔다. 담배를 질색하는 츠키시마의 표정은 더 대단해지고,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카게야마가 허둥지둥 오피스텔의 작은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싸하게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 이런 야심한 시간에 누구야? 혹시 의사선생의 애인?”

 후우우. 하며 길게 뿜어낸 연기가 츠키시마의 얼굴에 직격했다. 카게야마는 울대뼈가 오르내리는 것이 보이게끔 크게 침을 삼키고는 환자가 들고 있던 담배를 얼른 빼앗았다. 츠키시마는 혈압이 솟구치다가 급강하하는 기분을 몇 번씩 느끼면서 카게야마가 뺏은 담뱃불을 끄고 컵에 집어넣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컵 안에는 이미 꽤 많은 담배꽁초가 쌓여 있었다. 카게야마가 말 한마디 못하고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을 병원 사람들이 보면 뒷목을 잡을 것이다. 하지만 츠키시마는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의 동기는 수술에 대해서는 제왕이지만, 그 외에 모든 일엔 젬병이었다. 최소한의 상식이란 게 없어서 상황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그다지 없었다. 지금도.

 “아, 그리고 환자는 아까 깨어났는데. 이름이 쿠로오씨래.”

 중요한 말을 먼저 해 주는 법이 없었다.

 “쿠로오 테츠로. 32세의 언제나 친절한 남자지.”

 희한한 머리스타일의 남자가 스스럼없이 웃으며 말을 정정했다. 허스키하고 끝을 끄는 목소리가 어딘가 비밀스럽고 퇴폐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탈의된 상체에는 거즈와 붕대가 꼼꼼하게 매여 있었다. 더 살펴볼 것도 없이 자상에 의한 복부출혈에 대한 응급조치였고, 동기의 솜씨였다. 내장이 얼마나 쑤셔져 있었는지 알 수야 없지만 하루 만에 깨어나서 담배를 뻑뻑 펴대는 꼴을 보니 이 사람이 죽어서 동기의 앞길을 막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동기는 언제나 자기 자신만 조심하면 된다.

 “우오...의사선생. 저 섹시한 인형들은 뭐야?” 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저건 섹스토이라는 겁니다.” 따위로 앞뒤 잘라 먹은 대답을 하고.
 “얌전하게 생겨서 취향이 엄청난 선생이네. 저 금발 언니 오늘 써 봐도 되나?” 라고 물으면
 “?...의사셨습니까?” 라고 대답하고.

 종잡을 수 없는 대화는 듣는 것만으로도 발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츠키시마는 짜증 섞인 손길로 가지고 온 가방을 열어 혈압계와 항생제 등등을 가지런히 꺼내놓았다. 동기인 것이 죄라면 죄였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필요한 것을 챙겨온 것에 카게야마는 새삼 감동스럽게 바라보았다. 내가 해도 될까? 라고 따라온 말은 가볍게 무시하고, 츠키시마는 쿠로오라고 하는 환자의 옆에 앉았다.

 “팔 좀 걷어 주세요. 쿠로오씨.”
 “어제 이 의사선생이 잘해줘서 괜찮아. 이제 독한 술로 욱신거리는 것만 잊어버리면 될 거 같은데. 술은 혹시 안 가져왔어?”
 “술은 안 됩니다.”

 카게야마는 어느새 바닥에 주저앉아 츠키시마에게 혈압계를 건네주고 전원을 연결하며 끼어들었다.

 “수술 후의 통증은 몸을 움직이거나 감염 등을 일으키지 않으면 24시간 이내에 가라앉는 것이 보통입니다. 지금도 환부가 욱신거리신다면 진통제 주사를 놓는 게 가장 일반적인데 지금은 불가능한 상태지 않습니까?”
 “카게야마..” 츠키시마는 만류하려고 시도하며 쿠로오의 팔에 혈압계를 감았다.
 “그런 상태에서 다량의 알코올을 갑자기 마시게 되면 소화기계, 심혈관계, 중추신경계에 유해하고, 드물지만 급성 알코올 중독이나 환부 염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처럼 만류는 대실패로 끝났다. 혈압계를 작동시키며 힐끗 쳐다보니 의외로 남자는 카게야마의 뜬금없는 말들을 재미있다는 얼굴로 듣고 있었다. 삐빅, 하는 소리와 혈압계가 남자에 대한 데이터를 뱉어냈다. 정상 범위었다. 원하는 것을 얻자마자 츠키시마는 신나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카게야마의 입을 주저 없이 막았다. 기분이 나쁜지 강한 콧김이 손등에 몇몇 씩씩거리며 닿았다. 그래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왜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전 카게야마처럼 서번트 증후군이 아닙니다. 쿠로오씨.”
 “서번...트 뭐?”

그 단어를 듣자마자 손 안에서 카게야마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분노로 가득한 눈동자가 츠키시마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익숙한 일이었다. 츠키시마는 카게야마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품 안에 완전히 억압하여 가두었다. 상대의 심장이 뛰는 고동이 몸을 타 넘어 전해진다. 카게야마에게 이것은 꽤나 효과적인 안정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게야마 쪽에서 스스로 츠키시마 몸에 머리를 기대 왔다. 이 역시 병원관계자들은 모르는 동기의 모습이었다.

 “고기능 자폐를 말하는 겁니다. 쉽게 설명하면 카게야마는 의학과 관련되어 있는 분야에 재능이 집중되어서 다른 분야에서는 평균 이하의 발달을 보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계선 상에 있을 정도라 판정받은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쿠로오씨, 카게야마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느끼셨겠죠.”
 “뭐...나야 방금 깨어났으니 네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잘 몰랐어.”

 남자는 시작을 길게 끌면서 흐렸다가 말을 맺고는 이를 드러내며 시원하게 웃었다. 편견이 없어 보이는 미소였지만 츠키시마는 마주 웃어주진 않았다.

 “카게야마와 전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뿐이에요. 이제 어디서 왜 다치셨는지 말해주세요. 병원에 가지 못한 이유까지 모두요.”
 “요새 같은 시대에 드물게 무방비한 의사선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보호자가 무서운 사람이었나?”
 “지금이라도 경찰에 쿠로오씨를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의사선생을 신고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쿠로오는 새삼 통증이 도지는지 상처 위에 손을 올리면서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해왔다. 설렁설렁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날카롭고 판단력도 있는 남자였다. 츠키시마의 인상이 더욱 험악해지고, 카게야마는 눈만 대록대록 굴려 양쪽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다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표정이라 약이 올랐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날세우지 마. 보호자 선생. 이름이?”
 “츠키시마 케이.”
 “그래. 츠키시마 선생. 예상하고 있을 것 같은데, 내 상황이 지금 그렇게 좋지가 못해. 내가 살아 있는 걸 알게 되면 나는 고사하고 날 살린 의사선생도 가만두지 않을 무서운 사람들이 잔뜩 있어.”

 역시 경찰에. 라고 생각하는 츠키시마에게 남자는 화사하게 느껴지리만치 얼굴을 구기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 의사 선생네 집에서, 며칠 신세 좀 지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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