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가 그런 법이지만 , 이 또한 굉장히 단순하게 시작된 이야기였다.

 

 나 유학가려고.”

 아무렇지 않게 던져진 말에 덜꺽. 하는 소리와 함께 수저가 떨어졌다. 누군가의 성격처럼 깨끗하게 닦여 있는 판유리로 덮인 식탁 위였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어 초밥을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재깍, 재깍. 재깍.

 

 침묵 속에서 시계는 똑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내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그렇게 고인 시간이 한참이 되어 가는데도, 상대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약간 늦은 식사였던지라 미적지근해진 초밥을 잘 씹어 목구멍 너머로 밀어 넣은 의사 동기는 여전히 묵묵부답을 시전 중인 의사를 마주 보았다.

초밥 몇 개를 한꺼번에 넣어서 볼이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손은 여전히 젓가락을 들고 있는 모양대로 굳은 동기였다. 마치 흘러가는 시간이 의사만 피해가는 것처럼 정지된 자세다. 여기까지는 딱 예상한 대로였다. 의사 동기는 픽, 하고 속으로 웃음을 짓고 젓가락 끝으로 접시를 톡톡 두들겼다.

 

 “너는 어쩔래?”

 

 재깍재깍.         째각.

 

 

 

  <의사와 의사 동기와 만우절 이야기>

    

 

-1-

 

 “아즈네, 그거 급하게 처리할 일이야?”

 “아니, 아주는 아니야.”

 “그럼 지금 가지 마.”

 “?”

 “왜라니, 못 들었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하는 상대를 바라보던 간호사는 들고 있던 펜 끝으로 TV를 가리켰다. 뉴스에서는 기상 예보가 시작되던 참이었다. 저게 뭐? 라고 말하는 태평한 얼굴이 화면을 확인한 후 빠르게 사색으로 변해간다.

 

 “설마?” 믿고 싶지 않아하는 말에,

 “발동됐어.” 친절한 직장동료는 온점을 찍어주었다.

 “맙소사.”

 

 그랬다. 오늘 오전 병원에서는 다시 츠키시마 케이의 기상예보가 발동되었다. 사실 그 표현은 조금 부적절한 감이 있었다. 우선 예보가 될 수 없다는 점이 그러했고, 일단 발동되면 다른 날씨는 예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그러했다. 저기압과 태풍. 천둥과 번개. 그게 전부였다. 아즈네반사적으로 결재 일자를 확인했다. 다행히 하루 이틀 정도 여유가 있었다. , 하고 숨을 내쉰 그가 소중한 것을 대하듯 품에 결재판을 안았다. 그리고.

 

 “설마 둘이 싸웠어?”

 자연스럽게 츠키시마 케이의 기상예보 발동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상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을 들은 상대는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 모르겠어.”

 

 보통 같이 발령되곤 하는 예보였다. 손바닥이 마주해야 박수가 쳐지듯이, 싸움은 둘이 하는 법이라서 보통 이런 날엔 카게야마 토비오의 일기도도 꽤 볼만한 모습이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 쪽 일기도는 구름이 잔뜩 낀, 그러나 번뜩번뜩 천둥번개가 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풀죽은 모습뿐이었다. 그래서 병원 사람들은 분명히 카게야마 선생님의 크나큰 잘못이 있었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아니 한시라도 빨리 수술실의 폭군님께서 S의 의사새끼님께 사과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을 위해서. 그리고 병원의 안녕을 위하여.

 

-2-

 

 “츠키시마!”

 “...”

 “츠키시마.”

 “....”

 “....케이.”

 “?”

 

 항복하듯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고개는 여전히 화면만을 향하고,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는 시끄럽게 방을 채운다. 원래대로라면 가볍게 노닐어야 하는 기다랗고 얇은 의사 동기의 손가락은 실로폰이라도 치는 거처럼 힘주어, 팡팡팡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다다다다다다다. 울리는 기계의 소리를 들으며 카게야마는 쭈볏쭈볏 등받이 없는 의자 위에 앉았다. 드르륵 하고 바닥에 다리가 끌리는 소리까지 들었으면서, 가까이 다가온 온기를 알아챘으면서도 동기의 어깨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에 입술이 삐죽이 튀어나왔다가 사르르 사그라들었다.

 

 “뭐 봐?”

 “유학 서류.”

 

 화면 속에는 보란 듯이 유학에 대한 수속 서류가 띄워져 있었다. 카게야마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굉장히 유명하고, 굉장히 비싸고, 굉장히 멀다. 몸이 화면으로 들어갈 것처럼 기울었다. 파란 눈동자가 정신없이 움직인다. 읽어 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귀를 뒤로 잔뜩 접어 내리고 바르르 떠는 토끼 같은 동기. 츠키시마는 입에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혀끝으로 굴려 입 안 반대편으로 밀어 넣었다.

 

 “여기 가는 거야?”

 “....” 사탕은 다시 한 번 반대편으로 데굴데굴.

 “멀어.”

 “, 멀지.” 이로 깨물어 버릴 것처럼 물었다가 다시 놓고.

 “오래 있다 와?”

 “, 그럴 거야.” 결국.

 “....”

 “....”

 

 와드득. 입 안에서 부숴 졌다. 혀에 온통 퍼진 단 맛이 기분 나쁘다. 앙상하게 남은 막대를 입술에 여전히 문 채, 츠키시마는 가볍고 짧게 숨을 뱉었다. 손가락 끝을 만지작, 만지작. 시계는 그 날처럼 재깍, 재깍. 눈은 여전히 화면을 헤매고, 어깨는 바닥으로 꺼질 것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그런데도 왜 말을 못 해? 같이 가자고, 혹은 가지 말라고. 최소한 가는 거 싫어. 라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잘게 잘린 사탕조각을 다시 잘고 잘게 부수며 동기는 끓는 속을 뜨거운 숨으로 뱉어냈다. 평소에 넘치던 패기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 내 집 앞에 와서 당당히 너랑 잘 거야.’라고 말하던 동기가 맞긴 한가. 츠키시마는 지금 보이고 있는 카게야마의 소심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소심함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면, 일이 터진 것은 어제였다.

   

-3-

 

 어제는 만우절이었다. 평소라면 그런 식의 장난과는 억만년 정도 떨어져 있는 카게야마와 츠키시마였다. 다음날이 오프여서 평소처럼 같이 자고 일어나 초밥을 꺼내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장난을 칠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그냥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동기라도 거짓말이지?’ 정도는 물어볼 줄 알았다. 그렇게만 물어봐도 더 속일 생각이 없었다. 속일 생각을 하지 않아도 속일 수 있는데 구태여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쪽이 더 가깝지만. 그런데.

 

 “난 못 가.”

 

 이상하게도 한참동안 말이 없던 동기는 그런 대답을 내어 놓았다. 기가 차서 츠키시마는 눈을 들어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동기는 필요 이상 진지한 얼굴이었다. 거기서 일단 무언가 삐끗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설마했었다. 어쨌든 거기까지였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거짓말이었어. 라는 말을 재빨리 던지고 만우절이라는 개념을 가르쳐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눈치도 없고, 센스도 없는 동기가.

 

 “건강하게 잘 다녀와.”

 

 라며. 그 자리에서 자신을 외국으로 보내버렸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통에 식기를 와르르 쏟아 버리고는 집에 가 버린 것이다. 첫 대답이 나올 때보다 더 신속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내가 만우절 장난을 당한건가? 처음 츠키시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하는 꼴을 보니 모두 진심이었다. 혼자 가라는 말까지 전부 진심이다. 속이야 어떻든 간에 거짓말은 아니라는 사실에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방금 전까지 침대 위에서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고 붙어 있던 동기가 보여준 배신이었다. 역시 카게야마는 자신의 속에 천불을 내려고 태어난 것 같다. 라고 생각하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자신의 잘못이었다. 이 단순한 동기에게 너무 고차원의 장난을 쳤지. 내 죄야. 그는 백번 양보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 취소할 수 있어.”

 라고 던졌다. 솔직히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 정도는 접어줘야 알아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야.”

 

 와, 좋아하지도 않고 배운 적도 없는 욕이 나오려고 해서 의사 동기는 다시 한 번, 이를 꽉 다물었다. 그러나 이젠 정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회전의자를 휙 돌려 옆에 앉아 있던 동기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한껏 오그라들어 있는 토끼의 턱을 꽉 잡았다. 어제부터 피하려고만 하는 짙푸른 눈동자를 똑바로 잡아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니까 잘 대답해.”

 “..

 

 . 이겠지. 고개를 얕게 끄덕이는 것에서 볼살이 밀렸다 돌아가는 것을 보며 츠키시마는 크게 숨을 다잡았다. 안경을 쓴 얼굴은 의사의 전형적인 표본인 것처럼 이지적이고 날카로웠다. 그 얼굴로 자신을 좀 봐달라는 듯이 굴면서도, 입 밖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율배반적인 동기를 뚫어져라 보면서 의사는 천천히 힘주어 한 마디, 한 마디를 던졌다.

 

 “정말 나 혼자 유학 가?”

 “.....”

 

 세상이 무너진 표정이 이거겠지. 자신이 없이 살아온 날보다, 함께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동기였다. 같이 있는 것이 당연했고, 없어지는 것은 상상하지 않았다. 애정은 두 번째로 미뤄놓더라도 갑작스러운 존재의 박탈이 주는 스트레스는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평소처럼 가지 마. 하고 말하면 되는 일인데, 이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꼬아버리는 고집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진다. 내가 여기까지 했으니까 너도 뭘 좀 해 봐. 머뭇거리던 입술이 안으로 한번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가 천천히 내밀어지고.

 

 “.........”

 

 응이다. 분명히 응이라고 했어. 츠키시마는 정말로. 턱이 아프도록 이를 꽉 물어뜯었다. 가만 안 둘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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