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대로 비가 쏟아졌다. 강의실이 위치한 2층 복도는 습기와 높은 온도로 인해 불쾌하고 찝찝한 끈적임을 품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오이카와 선배!”
“잘 가, 시오리쨩.”
싱긋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 오이카와는 장마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공용 공간인 탓에 오는 무책임함으로 인해 반쯤 열려 있는 창문 틈 사이로 빗줄기가 들이치고 있었다. 수업은 이제 끝. 저녁 약속 전까지는 토비오와 있을까. 라는 스케쥴을 잠시 생각하며 오이카와는 자신의 우산을 챙겼다. 여러 개의 우산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들고 온 참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 비 온다고 하던데, 우산은 챙겼어?]
[오후 1시에 만나는 걸로 생각하면 됩니까?]
...
[아! 우산은 안 챙겼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그 뒤에 따라온 대답을 보니 픽, 웃음이 새었다. 참 대단한 무신경이었다. 헤어지자고 말해도 고분고분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오이카와는 핸드폰 끝을 턱에 댄 채,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기분이 몹시 나쁠 것 같았다.
미남과 야수
[Handsome man vs Beast]
당신은 나를 믿나요?
-알라딘 中-
-1-
비의 양은 꽤 되어서 오래된 인도의 패여 있는 곳마다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늦은 봄비보다는 여름비에 더 가까운 모양새였다. 나뭇잎 끄트머리에서 통통 튀어 오르는 방울들을 카게야마는 가만히 응시하다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보면 새삼 걱정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비 좀 맞는다고 어떻게 될 몸도 아니고, 젖는 것은 싫지만 유난을 떨 만큼은 아니었다. 사실 미야기 현에서 살 때는, 부모님과 연락이 맞지 않아서 비닐하우스 외박을 한 전력도 있는 카게야마였다. 도쿄로 왔다고 해서 새삼 달라질 것이 무어랴.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빗속을 뛸 생각으로 옷을 정리하고 라커로 향했다. 운동을 끝내고, 샤워까지 끝난 몸은 개운하고 가벼웠다. 비 없이도 젖어 있는 머리를 두어번 털면서 카게야마는 열쇠가 달려있지 않아서 덜렁거리는 라커를 열었다.
“...응?”
그는 라커에 붙여진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카게야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책 하나 없이 구겨져 있는 가방 위에는 단정하게 접힌 우산이 하나 올려 있었다. 카게야마는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2-
오이카와와 만나기로 한 곳은 학교에서 조금 동떨어진 곳에 위치하였으며, 개인적인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고급 카페였다. 카게야마는 물론 그런 것을 모두 알지는 못했다. 사람을 기죽이기 위해 만든 것임이 틀림없는 화려한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급지게 차려 입은 사람이 정중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 왔다. 인사를 받은 쪽은 얼버무리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빈틈없는 미소를 짓는 상대를 멀뚱한 시선으로 마주보았다.
“손님.”
“왜요?”
의도와 상관없이 어딘가 시비 같은 대답에도 웨이터는 흐트러지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우산은 맡기시겠습니까?”
“아...네,” 멋없는 까만 우산이 후드득 물을 떨구며 상대에게 건네어졌다. 그는 솜씨 있게 매듭을 단단히 지어 고쳐 들었다.
“예약자 성함 분은 어떻게 되십니까?”
“어...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예약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예의 바르면서도 옅은 멸시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 이름을 듣자 다시 공손해졌다. 카게야마는 그의 뒤를 따라 카페 안의 또 다른 카페로 보일만큼 커다란 방으로 안내되었다. 똑똑, 예의바르게 두드린 소리에 돌아오는 기척은 없었다. 하지만 웨이터는 익숙한 것처럼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손님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카게야마가 그 안으로 들어서자 등 뒤로 다시 조용히 문이 닫혔다. 비 때문에 어둑한 하늘에 이르게 켜진 전등불 밑에서 오이카와는 의자에 몸을 기대 앉아 책을 읽는 중이었다. 카게야마가 입을 열기도 전에 책 너머로 다갈색, 웃는 것처럼 휘어진 시선이 던져졌다. 카게야마는 가방끈을 꾹 잡아 쥐었다. 벌써 두 달이나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기도 하고, 때로는 입도 맞췄지만 여전히 오이카와 필터는 벗겨지지 않았다.
“일찍 왔네, 토비오쨩.”
“안녕하세요, 오이카와선배.”
여느 때처럼 여유로운 태도로 앉아 있는 오이카와를 보던 카게야마는 평소와 달리 선뜻 다가오지 않고 우물쭈물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책으로 돌려졌던 시선이 힐끗 다시 다가와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래도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에 결국 오이카와는 책을 덮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토비오쨩, 어디 불편해?”
“아닙니다.”
“부담스러워할 것 없어요. 여기 숙부가 하시는 곳이라서 종종 이용하는 것뿐이니까.”
“장소는 어디든 별로 상관없어요.”
오이카와는 점점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명하기도 애매해서 카게야마는 대충 얼버무리고 애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카게야마 몫의 음료는 벌써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어, 말없이 빨대에 입술을 대고 쭉 빨아들였다. 기세 좋게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며 오이카와는 또다시 숨죽여 웃었다.
“진짜 잘 먹네.”
뭘 사줘도, 뭘 입에 물려놔도 볼이 미어지게 밀어 넣고는 한꺼번에 삼켜 버린다. 사레들리는 경우도 엄청 잦으면서, 다른 모습으로 먹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이거 맛있습니다.”
“다행이네. 오늘 저녁은 못 사주니까 이걸로 대신하는 거였는데.”
“? 안 사주셔도 괜찮습니다. 저, 용돈 받고 있어요.”
순식간에 사라진 음료 가격을 알면 그런 얘기 못할 텐데. 오이카와는 자신이 일부러 보여주곤 하는 시계나 옷, 혹은 가방에는 전혀 시선을 두지 않던 카게야마를 떠올리고 말없이 웃었다. 사실 뭘 줘도 주는 대로 잘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이나 동생 한 명 키우는 기분도 들었다. 물론 만지고 싶거나 입을 맞추고 싶은 생각도 드는 부분에서 차이를 가지지만. 오이카와는 꽤 커다란 잔을 착실하게 비우는 카게야마를 보며 습관처럼 웃었다. 그로서는 인정하고 싶은 부분이 별로 없지만, 사실 이 후배를 만나는 시간은 굉장히 즐거웠다. 이것저것 잴 것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3-
“안 데려다 주셔도 되는데..”
오이카와 선배와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다르다.고 카게야마는 생각했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고, 어느새 헤어지는 자취집 앞이었다. 어디에서 계속 연락이 오는지 핸드폰이 바빠 보였다.
“내일은 못 보는 날이네요.”
“아쉬워?”
“네, 매일 보고 싶습니다.”
주말에 만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이번 주의 만남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생각에 솔직하게 말이 터져나왔다.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말을 주워들은 오이카와가 눈 크기를 키워 깜찍한 소리를 자각 없이 내뱉는 후배를 바라보았다.
“오늘 토비오쨩이 좀 이상하네.”
“제가요?”
“얼굴도 유달리 빨갛고...”
카게야마는 슬그머니 시선을 옆으로 뺐다. 사실은. 사실은 오늘 새벽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니, 사실은 이상한 꿈이 아니라 당연한 꿈이기도 했다. 꿈의 주인공은 오이카와 선배와 자신이었다. 절정에서 깨어났더니 예상했던 것처럼 다리 사이가 찜찜하고 불편했다. 그 후에는, 결국 새벽빛이 환해질 때까지 햇빛을 고스란히 얻어맞으면서 붉게 달아오른 뺨을 두드렸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속옷을 갈아입으면서 처음으로, 대학교를 집에서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래서.
“무슨 생각해?”
자신에게 기울어져 오는 고개를 무의식적으로 잡았다. 의외의 행동에 여자와는 다르지만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는 눈썹이 멋진 곡선을 그린다. 그렇게 두 손 안에 가두어진 오이카와 선배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다시 꿈이 떠올랐다. 몹시도 다정하고 상냥하게 입을 맞추고, 옷..을 벗고. 그리고. 떠올리는 과정 속에서 뺨을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뺨이 밀리도록 잡아 오는 것이 키스를 해달라는 걸까. 싶어서 오이카와는 살짝 고개를 틀어 보았지만, 빨갛게 된 얼굴은 완전히 수그러져 시선을 피한다. 뭔지 알겠다. 오이카와는 슬금슬금 장난기 도는 미소를 지었다.
“토비오쨩,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
이제 갓 고등학생을 졸업했다고 해도, 어찌 되었건 성인이고 혈기가 왕성한 남자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사귀고 있는 사이니까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를 어쩌면 좋아. 오이카와는 볼이 잡힌 채로 푸흐흐. 웃었다.
“설마 밤새도록 같이 있자는 거야?”
그 말이 끝나자 손은 볼 대신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누가 체육과 아니랄까봐 악력은 무시 못 할 정도여서 순간적으로 숨이 헉 들이켜지며 허리가 꺾이는 느낌까지 들었다. 꽤 놀랐지만 벗어나려고 하는 대신에, 사내아이다운. 그러나 딱 벌어졌다기 보단 모양이 잘 잡혀 있는 팔을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부르르 빗방울을 털어내듯이 머리가 흔들린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을 꽉 끌어안은 한 살 어린 애인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뭘 원하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면서 덤비는 걸까. 선배는 능숙하게 후배의 달아오른 몸을 달래고, 결국 스스로 고개를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에게 처음부터 다 가르쳐 줄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았다. 연애 시작부터 섹스를 지나, 마침내 이별까지 모두. 네 다음 애인이 누가 되었든지 간에 그 애를 대하는 모든 방식은 내가 기준이 되도록 만들어줄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귓불을 살짝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토비오쨩.”
“...네.” 새빨갛게 되어서 대답은 또 고분고분.
“어린애 장난 같은 연애는 그만 하고 싶어?”
“장난 아닙니다.”
그렇지. 너는 장난이 아니지.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여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짧게 입을 맞춰 주었다. 하지만 나는 장난이지. ....진짜 장난인가?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소리 나게 볼에 입술을 맞춰 주었다.
“오이카와 선배.”
“조금만 더 기다려.”
“....”
“정말로 멋진 밤을 줄 테니까요.”
물론 그 밤이 오늘은 아니었다. 상대방이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물고 계획에도 없는 밤을 보내는 것은 오이카와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는 카게야마에게, 자신의 애인인 이 귀여운 후배에게 멋지고 특별한 날, 멋지고 특별한 곳에서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하고 싶었다. 그가 여태껏 누구에게나 그러했듯이.
“저한테는 오늘도 멋집니다.”
“토비오쨩,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
오히려 상대가 이해가지 않는 듯이 고개를 흔든 후배는.
“전 오이카와 선배를 좋아하니까요.”
부끄러운 말을 얼굴 하나 안 붉히고 해댔다. 오이카와는 잠시 후배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남자 아이였다. 여자라면 차라리 어떤 실날 같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겠지만 우리 사이에 뭔가 신뢰, 미래에 대한 보장 같은 것이 있을 턱이라곤 없었다. 그런데 왜. 오이카와는 조금 더 진지하게 그 눈동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말의 내용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을 너무나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푸르고 어두운. 그리고 너무 깨끗한 눈동자에 시선을 완전히 빼앗겼다.
이번에는 오이카와 쪽에서 카게야마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섹스보다 뜨거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3-
“웬일이냐? 연락도 없이 약속에 다 늦고.”
이와이즈미는 막 도착한 오이카와의 맥주잔을 새로 주문하며 덤덤하게 물었다. 보통 늦지 않고, 늦는다면 연락을 하는 강박이 있는 상대였다. 그런데 오늘은 연락도 없이 늦은 채, 어딘가 헐레벌떡 흐트러진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게, 내 마음대로 잘 안 되네.”
오이카와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미 반이 비워져 있던 이와이즈미의 잔을 들어 꿀꺽꿀꺽 소리 내어 마셨다.
“....죽고 싶냐.”
“나도 이와쨩이랑 간접키스는 싫거든요?”
얼토당토 않는 대답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더욱 거세게 변했다. 오이카와는 전전긍긍한 표정으로 들썩거리다가 새 잔이 오자마자 다시 들이켰다. 그리고 목에 걸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제꼈다. 평소와는 계속 다른 모습에 이와이즈미가 조금 더 진지하게 안색을 살폈다. 어쩔 때는, 아니 대부분 장마철 토끼보다 예민한 녀석이었다. 그렇게 안 보이려고 더 귀를 곧추세우는.
“근데 목이 너무 타.”
“...?”
“나 오늘은 토비오가 좀 무서웠거든.”
“카게야마 일이었냐?”
이와이즈미는 둘의 연애에 찬성하지 않는 쪽이었다. 사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연애에서 찬성표를 던진 적은 거의 없기도 했다. 둥근 잔을 다시 빙글빙글 돌리며, 오이카와는 무심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왠지 그 애 싫어.”
“....” 이럴 때는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 좋았다.
“진짜 싫은 게 뭐냐면.” 오이카와는 다시 술잔을 들었다.
“나만 바라보는 눈동자. 내가 뭐라고 해도 믿어 버릴 것처럼 구는 그 눈동자 말이야.”
“그거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면 어쩌지.”
“적당히 해. 어차피 연애잖아.”
“그러니까, 연애잖아.”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어도 한 편으로는 헤어짐을 염두에 두는 연애. 상대를 100% 잡고 있다는 확신이 들게끔 하도록 오이카와는 행동하지 않았다. 여지를 남기는 연애는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이었고, 매번 성공적으로 끝내곤 했다. 어차피 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걸로 족했다. 자신의 인생은 설계가 완벽히 되어 있었고, 연애는 그 설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냥 거리를 좀 둬.” 이와이즈미는 매번 하던 조언을 던졌다.
“팬이라고 생각해. 네가 하던 말이잖아. 너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팬 미팅을 하는 것뿐이라고.”
가장 질색하던 말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그럴까. 오이카와는 손가락 끝으로 유리잔의 주변을 어루만지며 실없는 대답을 던졌다.
정말 그래볼까.
-4-
“쿠로오 선배.”
불현 듯 들리는 목소리에 배구공을 통통 튀겨내던 손이 멈췄다. 동그랗고 알록달록한 공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탄성대로 튀어 오르다 바닥을 구른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왠지 뛰어온 듯 숨이 세찬 후배는 배구공과 쿠로오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손을 내민다.
“이거, 필요하실 거 같아서.”
주먹을 쥔 것 같은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었다. 쿠로오는 빙긋 웃었다.
“생각해보니, 쿠로오 선배 라커가 바로 옆이었는데.”
조금 가쁜 숨에 의해 잠시 멈춘 말이.
“저는 오이카와 선배가 주신 줄 알았거든요.”
기대 이하의 말을 내뱉었다가.
“그런데 아니어서, 그래서 또 생각해보니 쿠로오 선배가 잘못 넣으신 것일 수도 있고 해서.”
기대만큼의 말을 내뱉고.
“비가 계속 오는데, 곤란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기대 이상의 말로 끝맺었다. 쿠로오는 찬찬히 그 말을 다 듣고, 숨이 완전히 잦아들고 나서야 싱긋 마주 웃었다.
“잘됐네. 배구하던 중이었거든.”
“...?”
“다시 하고 싶어졌어. 시간 되면 잠깐 같이 할까?”
동그란 얼굴이 확 하고 밝아졌다. 쿠로오는 바닥을 굴러다니는 공을 한 손으로 잡아 공중에 가볍게 띄었다. 완벽한 삼각형을 그리는 긴 손가락이 이마 위, 가장 정확한 위치에서 내려오는 공을 잡아 가볍게 쭉 밀었다. 카게야마의 눈은 어느새 공을 쫓고 있었다. 손끝을 떠나, 온 몸의 힘을 받아 자신에게 쏘아져 오는 공. 그 아름다운 호선, 정확한 토스를.
쿠로오는 공을 쫓느라 후배의 무심한 손을 떠나 바닥으로 떨어지는 우산을 보았다. 하나였다. 이 귀여운 후배는 자신이 쓰고 온 우산이 둘이 가진 우산의 전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것으로 좋았다.
‘뱨구 좋아하심니까?’
사실은 그 날, 혀 짧은 소리로 물어오던 순간부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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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를 믿나요?의 의미
카게야마 : 없음
오이카와 : 카게야마
쿠로오 : 카게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