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남과 야수
[Handsome man vs Beast]
겉모습이나 출신이 무슨 상관이야.
-공주와 개구리 中-
-0-
“정말 잘하네.”
쿠로오는 솔직하게 평을 내렸다. 소문으로 들은 것 이상이었다. 그는 잠시 오이카와를 떠올렸다. 하필이면 같은 세터에, 스타일은 다르지만 잘한다는 사실이 같았다. ‘이런 세터가 있는 팀과는 별로 부딪치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그는 자판기 버튼을 세게 눌렀다.
텅, 텅텅텅.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내려온 두 개의 캔에는 물방울이 잔뜩 맺혀 있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고, 식혀줄 것이 없는 한여름의 후덥지근함을 조금씩 받아들여가는 밤이다. 그래도 캔의 한기로 더위를 누르며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운치가 가득했다. 미적지근한 빗물 웅덩이의 냄새. 다시 시작된 풀벌레의 울음소리. 가로등의 빛무리가 번져 있는 까만 밤. 그 사이를 천천히 걸어간 쿠로오는 여전히 체육관 안에서 배구공을 통통 튀기고 있는 후배에게 캔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안 만났어?”
“만났었는데, 저녁에는 약속이 있으셔서요.”
목적어가 빠져도 쉽게 대화는 이어졌다.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오이카와 토오루 밖에 없었다. 지금은 ‘배구’가 추가되었고, ‘우산’이 업데이트 되었지만 중심화두는 여전히 뿌리 깊게 하나였다. 차가운 몸통을 단단히 잡고 카게야마는 손가락을 고리에 걸어 단번에 뚜껑을 땄다. 치이이이, 좁은 캔에 갇혀 있던 탄산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다. 습도와 온도가 높은 날의 운동은 온 몸의 땀을 쫙 빼놓기에 좋아서 카게야마는 목이 많이 말랐다. 그래서 청량감 넘치는 소리를 여전히 내고 있는 캔을 급하게 입에 대고 꿀꺽꿀꺽 소리 내어 마시기 시작했다. 쿠로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것을 보다가, 캔의 기울기가 점점 강해지고, 후배의 볼이 어딘가 새빨갛게 질리기 시작하자 눈썹의 각도를 묘하게 치켜 올렸다. 크으으. 시원하지만 아려오는 목을 표정과 소리로 표현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쿠로오는 그제야 자신의 캔을 천천히 들어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카게야마 후배는 원래 그렇게 먹나?”
“네엑?” 속에서 올라오는 기포를 가라앉히느라 괴상한 대답이 나간다.
“그렇게 먹으면 목 안 막혀?”
카게야마는 눈을 깜박이며 쿠로오를 보았다. 손에 들린 캔은 이미 한없이 가벼워져 재활용품 쓰레기가 되어 있었다.
“오이카와 선배도 그런 말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잘 안 고쳐집니다.”
딱히 식탐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버릇같았다. 볼이 한껏 부풀어 오르도록 밀어 넣고 나서야 어? 이게 아닌데 싶은지 한꺼번에 목 뒤로 넘기는 버릇 때문에 목구멍의 윤곽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곤 한다는 것을 쿠로오도 알고 있었다. 또, 생각보다 입이 작고 마른 편인 후배가 사실 먹는 양이 적지 않다는 것도,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알고 있었다. 켄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습니다. 라고 속삭이면서 젓가락질을 하는 친척이었다. 따라서 맛있어 하는 것도 적었는데, 후배에게는 뭐든지 맛있어 보여 보는 것만으로도 같이 입맛이 돌고 신기했다.
“대학교에 오면 배구를 더 많이 할 수 있을지 알았습니다.”
눈을 한번 깜박이니 과거에서 현재로 의식이 돌아왔다. 시무룩해진 목소리가 일깨운 정신이었다. 쿠로오는 말없이 자신의 캔 음료를 한 모금 더 목구멍 뒤로 넘겼다. 학과 개설은 늦어지고 있었다. 무엇을 얼마나 약속받았는지 묻지 않았지만, 예상과는 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한없이 무거웠다.
“실망했겠네.”
“네. 그렇지만 곧 많이 하게 되겠죠.”
두 손에는 어느새 다시 공이 들려 있었다. 손 안에서 핑그르르 회전한 공이 다부지게 다 잡혔다. 고개를 숙여 공위에 이마를 대는 후배의 모습을 쿠로오는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재미있는 계획 하나를 세우며 혼자 웃었다.
“배구 하게 해 줄까?”
“....네?”
커다래진 눈은 어떻게요? 라고 묻고 있었다. 쿠로오는 씨익 웃으면서 캔을 흔들었다.
“대신에 정말 배구하게 되면.”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는 캔 뚜껑 끄트머리에는 맛있어 보이는 떡밥이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1-
오이카와는 자신이 마음먹은 일을 잘 지키는 타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목표지향적인 성격인 탓이 아무래도 가장 컸다. 그래서.
“설마 오늘도?”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는 어딘가 약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누구보다 불만인 표정으로 오이카와는 대답을 올렸다. 사실 그는 당분간 카게야마를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나도 아주 잠시만, 말하자면 모든 계획의 가장 마지막 순위에 넣어놓으려고 했었다. 그렇게 조금씩 후배가 불러일으킨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사라지길 기다리려던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카게야마와의 만남은 착실히. 아니, 오히려 늘어만 갔다. 오이카와는 한껏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복도에서 잠시 만났던 이와이즈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만족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후배 앞에 앉아 있었다. 커피 한 잔과 아이스티 한 잔과 함께 말이다. 와우. 오이카와는 상대에게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 어떤 걱정도 묻을 일 없을 것 같은 얼굴은 오늘도 볼에 액체를 고체처럼 보이게 밀어 넣고, 삼키고, 사레가 들렸다가 다시 가고. 그게 또. 귀엽고. 커피는 오늘따라 몹시 쓰고.
“토비오는.”
오이카와는 잔 속 얼음을 휘저으며 말을 꺼냈다.
“못생겼어.”
“푸후웁―”
후배는 황당하다는 시선을 던지며 휴지로 음료수가 번진 입가를 닦아냈다. 오이카와도 알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심술이었다. 단언컨대, 오이카와는 자신의 연인들에게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장 상냥하고 예쁜 말을 들려주고, 듣고 싶은 말을 넣어주어 멋진 환상을 완성해주었다. 동화 속 공주님들처럼 느껴지게 말이다. 그런데 열중해서 무슨 말이 나올지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면 괜히 심술이 나고 괴롭히고 싶어졌다. 왕자님 같은 매너는 어디로 갔는지, 자꾸 건드리고 싶어지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리고,
“그래도 키스는 해줄게.”
입술을 꼬박꼬박 마주 대었다. 여자 아이들과 비교해서 좋은 립스틱이 주는 향이나 윤기도, 혹은 잘 관리된 부드러움이 있지는 않지만 매번 정신이 나가도록 물어뜯게 되었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떼어내면, 대개 요령 없는 후배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있었고, 때로는 새파래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좋다고 웃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가도 좋아졌다. 왜지.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오이카와는 스스로에게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이래서는 자신이 휘둘리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선배, 배구하셨다면서요?”
그런 불쾌함 속에서 오이카와는 불시에 들어온 습격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나비처럼 내려앉았다. 고이 접힌 날개는 한 장인 것처럼 겹쳐져서 얇고 쉽게 찢겨져 나갈 것 같은 위태로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는 얼음을 휘저어 대던 빨대를 내려놓았다.
“토비오쨩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선배에게 들었어요.” 나 말고 누구선배? 라고 되묻기도 전에.
“왜 그만 두신 겁니까?” 핵심을 찌르는 적극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오이카와는 눈을 접어 웃었다. 후배는 어느새 다 먹은 잔을 치워 두고 가운데 놓여 있는 케이크를 공략 중이었다. 가장자리부터 조심스럽게 무너뜨리는 법은 오이카와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사실 처음 조각 케이크를 사주었을 때, 카게야마는 피자처럼 들고 먹으려 해서 대참사 직전에 저지했었더랬다. 생각보다 이 후배에게는 가르칠 것이 많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배구에 대한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도 가르쳐줘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 때도 사귄다면이라는 가정 하의 일이었다. 어쨌든 그는 충분히 말을 고르고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안 하니까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접었어.”
“왜요?” 이미 들었던 이야기였다. 카게야마는 케이크의 반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되물었다.
“집안에 가업이 하나 있고, 이어가야 하거든요.”
“가업..?”
“오이카와 상은 경영학과잖아. 당연히 회사를 이어받기 위해서지.”
“그럼 졸업하시고 그 회사에 들어가시는 겁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큰 회사인가요?"
"크지. 꽤. 어딘지 들으면 놀랄걸."
그는 이런 말을 내뱉을 때, 상대가 보통 어떤 반응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경외와 어려움과 부러움. 그리고 희미하게 섞이는 나에 대한 열망. 내가 괜찮은 정도를 넘어서는 꽤 거물을 사귀는구나.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라는 조바심. 그것들을 감추고자 더 옹색하고 어색해지는 표정들. 보통의 경우, 상대가 배구에 대해서 잊게 되는 훌륭한 핑계거리였다. 오이카와는 숨을 돌렸다.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 이야기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배구보다는 나았다. 오이카와는 머리속에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와 걸러내야 하는 이야기를 바쁘게 골라내었다. 그런데 머리 셈이 끝나기도 전에 포크질을 멈춘 후배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안되셨네요.”
“뭐?”
“배구 못하게 되어서 속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 오이카와는 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같이 하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배구 정말 좋아하고, 오이카와 선배도 좋아하니까. 정말로 즐겁지 않았을까요?”
그는 입가에 부스러기가 묻은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후배가 미웠다. 그래, 딱 며칠 전 처음 느꼈던 기분에 백만을 곱한 만큼 미웠다. 오이카와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매번 예상에서 벗어나며, 자신을 어긋나게 하는 이 후배는 너무 미운데.
“아,”
“포지션 물어봐도 됩니까?”
보기 싫지는 않았다.
“세터였어.”
“정말입니까?”
마지못해 하는 대답에 눈은 어느 때보다 커다랗고 막힘없이 뜨여졌다. 그 후에는 드물게도 대화의 주도권이 카게야마에게로 넘어갔다. 여느 때보다 즐겁고 진지한 태도로 후배는 '배구를 하던 오이카와'에 대해 묻고, 들었으며, 또 물었다. 공부를 잘 하는 오이카와, 리더십이 넘치는 오이카와, 인맥이 넓은 오이카와, 어딜 가도 회장인 오이카와, 경영학과의 오이카와, 졸업 후에는 국내의 가장 유망한 기업 중 하나에 입사가 예정되어 있는 오이카와, 재벌가의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는 오이카와, 그렇게 쿠로오 테츠로를 이기는 오이카와. 그 수많은 오이카와 대신에 가장 보잘 것 없어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이 끌어내어졌다. 그리고는 가장 빛나는 것을 보듯이 눈부셔 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오이카와는 무심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한참이나 자신이 비친 쇼윈도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배구 얘기를 하면서 오이카와가 웃고 있었다. 그는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꼈다.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토비오.” 오이카와는 대화를 멈췄다.
“네!” 기운찬 목소리였다. 자신과는 달리 배구를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후배였다. 오이카와는,
“내일.” 충동적으로,
“혹시 다른 스케줄 있어?” 그 빛나는 상대를 움켜쥐기로 결정했다.
“?”
내일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도 주말로 치던 터라 보통은 만나지 않곤 했었다. 그런 이야기를 먼저 건넸던 선배의 제안에 카게야마는 머리 위로 의문을 띄우고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대답이 나가기 전 짧은 시간, 그가 애써 무언가 있을지 모르는 스케줄을 더듬는 동안 오이카와의 가상다이어리에서는 30분 단위로 정리되어 있던 내일의 일정이 하나하나 삭제되었다.
“없는 것 같긴...한데요.” 자신 없는 목소리의 끝을.
“그럼 나랑 있는 걸로 할까?” 상대가 확 잡아 당겼다.
이번에는 말의 속뜻을 찾느라 골몰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아직 입가에 남아 있던 케이크 조각을 닦아냈다. 남에 의해 흔들리는 것을 끔찍해하는 오이카와였다. 혹여 받았다면, 상대에게 받은 만큼 흔들림을 돌려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그는 오늘 유달리 자신을 흔든 이 귀여운 후배에게 내일, 일전에 약속했던 멋진 밤을 선사해 줄 결심이 섰다.
-3-
“...진심이야?”
“응.”
켄마는 손에서 게임기를 떨어뜨렸다. 맨발 사이로 톡 떨어진 게임기 화면이 픽 소리를 내며 꺼졌다. 쿠로오는 잡지 위로 손가락 두 개를 벌려 브이를 그려 주었다.
“허가도 오늘 모두 났지.”
“오이카와. 분명히 화낼 거야.”
“오이카와를 자극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야.”
“결과가 그렇잖아.”
“....뭐, 어떤 약에도 부작용은 있으니까.”
“보통 부작용 있는 약은 안 먹지 않아?”
“약이 그거 밖에 없으면 먹어야지.”
책갈피가 이마 위로 톡 떨어졌다. 눈이 가려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감아 버리며 쿠로오는 발가락 끝을 까닥였다. 내일, 한 사람의 표정이 기대되었고, 한 사람의 표정은 피하고 싶었다.
-4-
카게야마는 버릇처럼 가방줄을 꽉 쥐고 게시판에 새롭게 붙은 공고를 바라보았다.
[제 128회 과 연합 체육대회 종목 확정]
1. 남자 : 총 6종목
(1) 농구
(2) 축구
(3) 티볼
그리고,
:
(6) 6인제 배구(신설)
눈동자가 마지막 글자에서 떠나지 못했다. 크게 확장된 동공을 ‘배구’라는 단어가 공고문에 박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어, 어어.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벌어진 입가가 곧, 부드럽게 휘어지고 기쁘게 물결쳤다. 빗금이 그어진 것처럼 군데군데 발갛게 된 볼로 신나게 웃으며 카게야마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알 수 없는 선배의 알 수 없던 약속이 떠올랐다.
“어때?”
뒤에서 쑥 튀어나온 손이 목을 감싸고, 몸을 뒤로 당겼다. 어영부영 끌려가니 단단한 품이 벽처럼 맞이한다. 반사적으로 밀치기 전에, 향이.
“배구하게 된 소감이.”
그 좋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 쿠로오 선배! 반갑게 이름이 불려졌다. 마주하게 된 파란 눈동자 속에 가득 들어차다 못해서 픽픽 새어나오고 있는 기쁨이 별사탕처럼 달아 보였다.
“이거 쿠로오 선배가 하신 겁니까?” 팡팡 터지고 있는 생기가,
“물론.” 왠지 모르게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단합니다! 어떻게 하신 거에요?”
말로 그것을 다 할 수 있을까. 쿠로오는 하루를 꼬박 날려야 했던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와 많은 통화들을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 엄지와 검지 사이를 아주 약간 벌려 보이며.
“능력이 좋거든.”
라고만 말했다. 반짝반짝 웃고 있는 얼굴을 보니, 켄마가 왜 그렇게 힘들어 보이는 퀘스트를 기를 써가며 깨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보상이 좋으면, 과정이 조금 힘들어도 넘어가지는 법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그는 이 퀘스트의 보상을 꼭 받을 생각이라는 뜻이었다. 이제 그것에 대해 막 이야기를 꺼낼 참이었다. 그런데.
“오랜만이네, 테츠로.”
상자를 열어 보기도 전에, 끝판왕이 나타나셨네. 쿠로오는 고개를 한 번 까닥하고 천천히 뒤를 돌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유 외에는 어떤 틈도 없이 잘 차려입은 차림새와 부드럽고 남자다운 생김새가 어우러진 최종 보스님이자 새끼 오리의 각인자. 그러니까.
“오이카와.” 토오루.
둘째 어머니를 빼다 박은 멋진 눈매 속 다갈색 눈동자가 주욱, 쿠로오를 훑어 내렸다. 상대에 대한 평가가 바코드처럼 찍힌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아직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타고 넘어가 자신의 새끼 오리에게 닿는다. 한껏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오랜만이라 반갑긴 한데.”
어떤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쿠로오 가문의 장남 씨가.
“‘내 후배’에게는 무슨 볼 일일까?”
왜 여기서 내 애인에게 손을 대고 있나.
왕자의 가면을 던진 또 한 마리의 야수가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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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이나 출신이 무슨 상관이야.]
의 의미
카게야마 : 오이카와 토오루
오이카와 : 쿠로오 테츠로
쿠로오 : 카게야마 토비오